참살이의꿈

친구와 지인

샌. 2021. 12. 15. 12:42

"나에게 친구가 있는가?"

가끔 해 보는 자문이다. 여러 얼굴을 떠올려보지만 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친구 범위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는 관계로서의 친구라면 다들 고개가 저어진다. 인생에서 한 명의 진실된 친구를 가지는 일이 쉽지 않다.

 

당구를 치거나, 바둑을 두거나, 산길을 같이 걷거나, 또는 학교 인연으로 만나서 옛날이야기로 시시덕거리는 모임이 있지만 친구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그저 같은 즐길거리를 공유하는 아는 사이라고 해야 맞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면서 함께 기뻐하거나 슬퍼하는 관계는 아니다. 나를 성찰하게 해 주며 우정 속에서 서로 성장해 나갈 때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에게는 친구가 없다.

 

잘 나갈 때는 가만 있어도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지만, 별 볼 일 없다 여겨지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것이 세상인심이다. 그러나 친구는 어려울 때 드러난다.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주고, 비가 내리면 같이 맞아준다. 이런 옛말이 있다.

 

酒食兄弟千個有

急難之朋一個無

 

술 먹고 밥 먹을 땐 형, 동생하며 천 명이나 모이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는 한 사람도 없다.

 

직장에 다닐 때 분주하던 사람도 은퇴하면 다수의 연락이 끊어진다. 대부분이 이해에 따라 만나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세상인심이 그러하니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가 되어야 누가 친구이고, 누가 그저 지인(知人)에 불과한지가 드러난다. 단 한 명이라도 친구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노년이 되고 더구나 코로나로 2년 넘게 발이 묶이면서 사람 만나는 일이 더 줄어들었다. 그래서 아쉬운 점은 없지만, 아무래도 진실된 친구 하나 갖지 못한 것은 불행한 일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가 그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임을 잘 안다.

 

나에게도 몇 명의 친구가 있었다. 30년 가까이 교유하며 서로 한 몸이라 할 정도로 많은 것을 공유하고 애환을 나눈 친구며, 내 영혼의 성장에 동반자가 되어준 도반(道伴)이라 부를 수 있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멀리서 지켜보는 관계다. 옛 친구도 만나면서 생각을 나누지 않으면 별 의미가 없다. 한창때의 친구가 떠난 뒤 새로운 친구와는 아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지인은 있지만 친구는 없다. 앞으로도 사람 친구를 만날 행운은 찾아올 것 같지 않다. 노년이 되면 사람을 대하는 입맛도 까다로워진다. 대신 나는 꽃이나 새, 산 같은 자연과 친구를 맺고 싶다. 이미 친구 관계 같은 교감을 느끼기도 한다. 자연은 인간처럼 변덕스럽지 않다. 말은 못하지만 마음은 주고받을 수는 있으니 친구가 못 된다 할 수 없다. 말 없는 자연의 가르침은 무궁무진하다. 자연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 자연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것, 이 또한 노년이 주는 기쁨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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