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까불지 마라

샌. 2022. 5. 18. 07:08

그저께 아침에 일어나는데 휘청했다. 천정과 창문이 빙빙 돌면서 놀이기구에 탄 것 같이 어지러웠다. 다시 침대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 있으니 진정되었다.

 

어지럼증이 처음 나타난 건 8년 전이었다. 에버랜드에서 롤러코스터 등 신나는 놀이기구를 타며 젊은이 흉내를 내다가 식겁했다. 기구에서 내렸는데도 세상이 핑핑 돌며 멀미가 났다. 겨우 집에까지 운전을 하긴 했으나 몇 주 동안 어지럼이 사라지지 않아 혼이 났다. 그 뒤로도 일 년에 두세 차례는 어지럼증이 나타나 몇 주씩 괴롭히다가는 사라지는 게 반복되었다.

 

병원에 가서 뇌 CT를 찍었으나 이상은 없었다. 결국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다행히 주기적으로는 나타나던 어지럼증은 3년 전쯤부터 소식이 끊겼었다. 그런데 이번에 다시 찾아온 것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아내는 어지름증을 더 심하게 겪었다. 어느 날 아침에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 보니 몸을 비틀며 힘들어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연신 구토를 했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주위가 빙글빙글 돌아간다고 했다. 너무 심해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아내는 나보다 더 열심히 병원에 다니고 체조를 하며 그 뒤로는 괜찮아졌다. 아내는 굵고 짧게 겪고 끝낸 반면, 나는 가늘고 길게 시달리고 있다.

 

이석증은 심각한 병은 아니지만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증상이다. 우선 일상생활이 지장을 받는다. 이번에는 특히 눕거나 일어날 때 주위가 핑핑 돌아간다. 그래선지 늘 머리가 무겁고 찝찝하다. 무기력해지지 않을 수 없다. 어제 계획한 등산은 취소했다. 몸을 걱정해서라기보다 의욕이 안 생겨서다.

 

다행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이삼 주 견디고 나면 자연스레 없어진다. 어지럼증은 예고 없이 찾아와서 괴롭히다가는 소리 없이 사라진다. 그동안 몇 년간 아무 소식이 없어서 완전히 떠나갔나 보다 했는데 웬걸, 까먹지 않고 또 찾아왔다. 그만 인연을 끊었으면 좋으련만, 끈질긴 놈이다.

 

사람의 일상은 작은 요인에도 쉽게 영향을 받는다. 행복은 깨지기 쉬운 유리 구슬 같다. 건강하거나 잘 나갈 때 큰소리 칠 일이 전혀 아니다.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진부한 말이지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몸에 이상이 생기면 안다. 병은 나태한 일상의 불침번인지 모른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인다. "너, 까불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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