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스님이 선택한 죽음

샌. 2022. 6. 21. 13:34

며칠 전 연관(然觀) 스님의 영결식이 열렸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관 스님은 불교계의 큰 어른이셨고, 특히 한문에 조예가 깊으셨다. 스님은 독거 수행승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1년에 8개월 정도는 선 수행을 하신 분이시다. 또한 도법, 수경 스님과 지구 환경과 생명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 참여하셨다.

 

스님이 화제가 된 것은 돌아가신 방식 때문이다. 돌아가실 때가 되었음을 인지하신 뒤에는 항암치료 대신 곡기를 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면서 마지막을 맞으셨다고 한다. 마지막 일주일 전쯤부터 곡기를 끊고 물과 차만 마시다가, 마지막 사흘간은 아예 물도 끊으셨다. 

 

여느 사람들이 마지막에 혼수상태에 빠지는 것과 달리 스님은 평생 수행을 해 온 분답게 입적 하루 전까지도 의식이 또렷했고, 찾아온 사람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고 한다. 생사일여(生死一如)를 몸으로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치료를 담당한 의사의 말에 따르면 통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스님의 뜻에 따라 진통제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스님처럼 스스로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가끔 접한다. 종교인이 아닌 일반인도 여럿 사례를 알고 있다. 어떤 수행을 거쳤든 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가능한 죽음의 방식이다. 또한 고결하고 아름다운 죽음의 방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마지막 때를 알아채고 음식물 섭취를 안 함으로써 - 안 하는지 못 하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 죽음을 맞이한다고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곡기를 끊는 것은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죽음을 맞는 생명의 보편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죽음을 적대시하게 된 원인은 촌각이라도 생명을 연장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현대 의술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제는 단순한 생명 연장보다는 편안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완화의료와 더불어 안락사도 그런 방법 중 하나다. 치유될 가능성이 전무한 상황에서 고통스럽게 목숨만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안락사가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게 만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웰빙(well-being)과 함께 웰다잉(well-dying)도 인간의 권리로 봐야 하지 않을까.

 

예부터 인간의 오복(五福)을 말할 때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든다. 젊었을 때야 갖고 싶은 것도 많겠지만 이만한 나이가 되고 보니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마지막 때인 고종명이다. 병이 없고 사고도 당하지 않고 편안하게 자연사를 할 수 있다면 고종명은 오복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안 되는 상황에서는 무엇이 인간다운지 최선을 길을 찾아야 한다. 

 

스님의 죽음을 보면서 나의 죽음도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불치의 병에 걸려서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영위해야 한다면 내가 선택할 길은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조만간 안락사가 합법이 될 것 같지는 않고, 하늘이 허락해 준다면 나도 스님과 같은 길을 가고 싶다. 과연 감당해 낼 그릇이 될까. 그 답은 평상시의 '상주사심(常住死心)'의 삶에 있지 않을까, 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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