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서운한 감정에 관하여

샌. 2022. 7. 2. 10:32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한다. 천진난만해진다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지만, 좁은 세계에 갇혀 잘 삐진다는 걸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삐진다는 건 서운한 감정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내 경우에도 전보다는 서운한 감정에 자주 휘말린다. 별 것 아닌 일인데 서운하게 느껴지고 새초롬해진다. 가만히 살펴보면 서운한 감정의 근저에는 상대에 대한 과한 기대가 있다. 상대의 탓이기보다 내 기대심이 자초한 것이다. 상대는 내 서운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할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괜히 혼자서 안달하는 경우가 서운한 감정이다.

 

며칠 전에 영화를 보다가 모녀의 대화가 귀에 쏙 들어왔다. 어머니가 간암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딸은 돈이 없어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상태다. 딸이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아무것도 못 해 줘서 미안해." 그때 엄마가 대답한다. "나는 해 준 게 뭐 있는데." 여기에 답이 있다. 만약 엄마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라는 마음을 품고 있다면 서운한 감정이 여름의 뭉게구름처럼 일어났을 것이다.

 

서운한 감정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기대감을 갖지 않아야 한다. 특히 부모 자식간에 이런 기대 환상이 크다. 내가 누군가를 소중하게 생각했어도 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서운함에서 해방된다. 애초 사람에 대한 기대를 품는 게 잘못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인다. 내 효용가치가 다하면 다 내 곁을 떠날 사람들이다. 냉혹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엄연한 현실이다.

 

또 하나는 손익계산서를 냉정하게 따져보는 것이다. 내가 최근에 경험한 서운함은 일종의 무시 당한다는 느낌이었다. 얄팍한 자존심과도 연관되어 있다. 서운한 감정에는 반드시 상대가 있다. 그간 상대와 나 사이에 주고받은 유무형의 거래를 저울질해 봤을 때 분명 받은 게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은 미워하라고 하지만 이성은 그렇지 않다고 속삭인다. 이럴 때는 대차대조표가 정확한 이성의 안내를 받는 게 좋다.

 

서운한 감정을 해결하지 않으면 화와 원망, 심하면 분노에 휩싸인다. 아닌 척 괜찮은 척 해도 소용없다. 언젠가는 폭발하게 되어 있다. 서운함의 앞뒤에는 '서러움'과 '아쉬움'이 있다. 서운함이 서러움이 아니라 아쉬움 쪽으로 방향을 틀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쨌든 서운한 감정의 바탕에는 나의 이기심이 존재한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이다. 그걸 바로 본다면 서운함이 아쉬움을 너머 감사함으로 변할지도 모른다.

 

혹시 잠깐이라도

당신의 마음에 서운한 생각 드신 일 있으세요?

그래서 침울해지녔나요?

그럴 땐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생각해 보셨나요?

생각의 근원으로 내려가 보셨나요?

 

그곳엔 언제나

내가 중심이 되어 있답니다.

항상 내가 해준 일이 기억나거나

그쪽에 내게 못 해준 일이 생각나겠죠.

 

서운한 생각이 들면

우리 모두

빨리 부끄러워집시다.

남의 것 탐낸 것이니까요.

 

- 서운함을 감사함으로 / 김영자

 

 

 

 

'참살이의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쌓이면 터진다  (0) 2022.08.19
혼자서 잘 놀아야 노후에 행복하다  (0) 2022.07.23
천지가 다함이 있어도 시름은 다하지 않으니  (0) 2022.06.28
스님이 선택한 죽음  (0) 2022.06.21
고집만 세지고  (0) 2022.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