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혼자서 잘 놀아야 노후에 행복하다

샌. 2022. 7. 23. 11:25

뇌리에 새겨진 한 장면이 있다. 40대였을 것이다. 직장 동료와 시골길을 걷다가 외딴 초가집 마당에서 의자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를 봤다. 한 손에 지팡이를 짚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나직이 말했다. "저렇게 늙는 건 비극이야. 난 저렇게는 안 되겠어."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외로움과 노년의 고단함이 묻어나기는 했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노인이라고 불쌍한 연민의 대상이기만 한 걸까.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나름의 자족의 행복이 있지 않을까. 나는 할아버지한테서 여유와 편안함을 읽었지만 동료에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삶을 타인과 공유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수많은 인터넷 카페나 단톡방, 각종 SNS에서 넘쳐나는 사연들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실이다. 함께 어울리는 것만이 행복이라고 외친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인간은 함께일 때 더 행복할까?

 

노년에 들고나서 깨닫는 것 중의 하나가 인간은 혼자일 때 행복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행복은 자족(自足)이며 내면의 평화다. 세상의 번다(煩多)와 훤소(喧騷)로부터 가능하면 멀어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모든 일에는 양면의 속성이 있다. 기쁨을 크게 누릴수록 찾아오는 슬픔도 비례한다. 감정의 진폭을 줄이는 것이 지혜라고 선인들은 가르친다.

 

우리 문화는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문제가 있거나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스스로를 성격이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게 만든다. 직장 생활이든 어디든 '혼자'가 존중받는 자리는 없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집단주의 문화가 지배한다. 늘 타인을 의식해야 하는 반면 나를 온전히 '나'로 대접하기가 힘들다. 이런 문화에서는 사회성이나 인간관계가 제일 중요한 요소가 된다.

 

노년이 되면 사회성이나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희박해진다. 쇠하는 심신이 옛날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사회성은 노후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시기가 노년이다. 힌두교인은 50세가 되면 임서기(林棲期)라고 하여 숲으로 들어갔다지만, 현대적 기준으로는 대략 65세에서 70세 사이쯤 될 것 같다. 삶의 질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때다.

 

이러함에도 계속 전과 같은 삶의 스타일을 고집하는 게 대부분이다. 여전히 무리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 한다. 친구가 주는 위안과 기쁨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계가 있으며 나이가 들 수록 점점 실감하게 될 것이다. 의지할 대상이 있다는 건 허상일 뿐이다. 친구나 동료 중 누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마저도 언젠가는 모두 떠나가고 나만 남게 된다. 그렇다면 인생의 의의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걸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족의 잔잔한 기쁨은 남아야 하지 않는 걸까.

 

물론 성향에 따라 살아가는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나 같은 사람은 혼자 있으면 에너지가 충전되지만 밖에 나가면 방전된다. 반면에 밖에서 시끌벅적 어울려야 활기가 나는 사람도 있다. 할 일 없이 집에 있으면 감옥 같아서 못 견딘다고 한다. 사람은 서로 다르게 타고나며 자신에게 맞는 삶의 스타일이 있다. 다만 노년이 되어서도 너무 지나치게 일과 외형적 활동을 중시하는 풍조를 경계할 뿐이다.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사회의 통념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자신을 바로 알고 지키는 게 소중하다.

 

내 일상은 단조롭다. 책 읽고 블로그에 글 끄적이고 가끔 걷기 위해 외출하는 정도다. 사람 만나러 서울에 나가는 날은 한 달에 두어 번 정도다. 솔직히 고립이 염려되기는 한다. 사람 관계는 만나지 않으면 멀어지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했지만 이제는 거기서도 자유로워졌다. 행복으로 가는 길이 한 가지만이겠는가. 나는 나의 길을 갈 뿐이다. 혼자가 주는 쓸쓸함, 약간의 슬픔이 배인 고독을 나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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