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섬집 아기 / 한인현

샌. 2023. 7. 18. 09:43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 섬집 아기 / 한인현

 

 

이 동시가 1946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때는 해방 직후의 혼란하고 궁핍한 시대였다. 시의 배경도 외딴섬의 외딴집에 사는 가난한 엄마와 아기다. 남편은 고기잡이를 나갔거나 아니면 없는지도 모른다. 이 동시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 동요로 만들어졌다.

 

아기를 혼자 집에 남겨 두고 굴 따러 나온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갈매기 울음소리가 아기의 울음소리로 들렸을지 모른다. 맘이 설렌 엄마는 굴 따는 걸 그만두고 갯벌을 가로질러 아기에게로 달려온다. 호젓하고 서정적인 분위기가 끝에 가면 가슴이 울컥해진다.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엄마의 마음이 '다 못 찬 굴바구니'와 '달려온다'는 말에 들어 있다. 눈을 감고 이 시가 묘사하는 풍경을 그려본다. 보편적인 우리들 삶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외롭고 쓸쓸한, 삶의 잔잔한 슬픔을 품고 있는 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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