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고단(孤單) / 윤병무

샌. 2023. 6. 30. 10:40

아내가 제 손 잡고 잠든 날이었습니다

고단했던가 봅니다

곧바로 아내의 손에서 힘이 풀렸습니다

 

훗날에는 함부로 사는 제가 아내보다 먼저

세상의 손을 놓겠지만

힘 풀리는 손 느끼고 나니 그야말로

별세(別世)라는 게 이렇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날 오면 아내의 손 받치고 있던

그날 밤의 저처럼 아내도 잠시 제 손 받치고 있다가

제 체온에 겨울 오기 전에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아내 따라 잠든

제 코 고는 소리 못 듣듯

세상에 남은 식구들이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습니다

 

- 고단(孤單) / 윤병무

 

 

존재의 쓸쓸함을 자주 느낀다. 한밤중에 잠이 깨서 사위는 적막한데 사근거리는 내 숨소리를 듣고 있을 때라든가, 밖에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돌아오는 어두운 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라든가 문득문득 사는 일이 허전하고 쓸쓸해진다. 시인이 제목으로 쓴 '고단(孤單)'이라는 말이 가슴으로 젖어드는 때다.

 

'고단하다'라는 형용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이 지쳐서 느른하거나 처지가 좋지 못해 힘들다는 뜻이 있다. 고달프거나 고되다는 말과 비슷하다. 다른 하나는 이 시에 쓰인 '고단(孤單)하다'이다. 단출하고 외롭다는 의미다. 그러고 보니 인생은 '고단'하면서 '고단(孤單)'한 것이구나. 사람은 누구나 두 고단을 살아간다. 세상에 남은 식구들, 조금만 고단하면 좋겠다는 시인의 바람이 애잔하다. 우리는 고단이라는 연줄로 얽혀있는 가련한 존재들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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