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40년

샌. 2023. 9. 1. 10:59

40년 전에 같이 근무했던 직장 후배 셋을 만났다. 우연히 한 사람과 통화가 되었고, 그를 통해 다른 둘과도 연결이 되었다. 마침 셋 모두 기억에 선연히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 내가 먼저 만나보자고 했다.

 

우리는 1981년에 M중학교에 같이 발령을 받았다. 개설 학교인지라 신입생밖에 없어 교직원이 30명 정도 된 단촐한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지 모른다. 나는 두 번째 학교였지만 셋은 갓 대학을 졸업한 첫 발령이었다. 싱그러웠던 20대의, 순수했던 꿈과 열정이 있었던 시절이었다.

 

처음에는 서로의 얼굴에서 중첩된 40년 세월의 아득함을 느꼈지만 옛 추억을 공유하면서 신기하게도 이내 그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40년의 긴 시간도 사람을 바꿀 수는 없는 듯했다. 내가 가졌던 이미지가 온전히 재현되는 것을 볼 때 한없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이 있고, 그 천성이랄까 품성이 인생의 길을 어느 정도 결정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아니라 후배들도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나갈 때는 괜스레 만나자고 했나, 후회되기도 했다. 마치 선 보러 나가는 듯 설레기도 하면서 발걸음이 무거웠다. 낯 익은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늘 그렇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일에는 인연이 있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 있고, 인연이 안 되면 아무리 발버둥친들 헛일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만남과 이별의 신비에는 인연이라는 연결고리를 끼우고 싶은 것이다. 우연으로 치부하면 세상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인연이라는 생각에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배어 있다.

 

우리는 M중학교에서 4년간 같이 근무한 후 헤어졌다. 그리고 근 40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대의 청춘에서 6, 70대의 할배, 할매가 되었다. 산다는 일이 한편으로는 쓸쓸하고 허망해 보이지만, 기실은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살 바에는 이왕이면 인생이 품은 온갖 맛을 다 느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너무 단맛만 편식하려 하지 말고.

 

후배 H는 세속의 티가 묻지 않은 맑은 성품이 더욱 익어가고 있는 듯했다. 마치 수녀와 같은 분위기가 풍겼다. 당시에도 지적이며 독립적이어서 눈에 띄었는데 그녀의 전체 삶을 통해 그런 성향이 지속된 것 같다. 그때는 어울려 술도 많이 마셨는데, 강화도에 놀러 갔다가 막걸리에 취해서 뻗었던 얘기를 하며 웃기도 했다.

 

각자 가는 길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의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착한 마음을 내는 것 이상은 없지 않을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면서 동시에 힘든 이웃을 보듬고 함께 나아가는 배려와 예의를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인생에서 허례와 겉장식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40년 만에 후배들을 만나고 많은 것을 배우며 돌아오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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