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눈감지 마라

샌. 2024. 3. 6. 10:09

이기호 작가가 7년 전에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소설을 책으로 묶어냈다. 신문 연재의 특성상 짧은 내용으로 된 연작인데, 각 부분이 독립된 에피소드로 되어 있으면서 일관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방에서 작은 대학을 졸업한 정용과 진만은 원룸을 얻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살아간다. 번듯한 일자리나 기본 자본이 없는 상태에서 내동댕이쳐지다시피 생존경쟁의 정글에 뛰어든 셈이다. 도리어  학자금 융자에 따른 1천만 원 정도의 빚을 안고 사회생활에 나선 것이다. 둘은 편의점, 택배 상하차, 출장 뷔페, 고속도로 휴게소 아르바이트 등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조금씩 빚을 갚으면서 힘겹게 살아간다.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팬티스타킹을 사 입고, 아파도 마음대로 병원에도 가지 못한다. 그러니 문화생활은 꿈도 꿀 수 없다. 그들이 접촉하는 사람들 역시 사회의 하층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소설은 정용과 진만을 중심으로 사회의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로 되어 있다.

 

정용과 진만이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를 대표하지는 않을 것이다. 능력 있고 잘 나가는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을지 모른다. 화려한 현실의 이면에는 이렇듯 소외된 젊은이들 또한 존재한다. 소설 제목인 '눈감지 마라'는 이런 슬픈 현실을 외면하지 말라는 작가의 당부인 것 같다. 학벌이 변변찮고 고정된 일자리가 없으면서 지방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세상은 잔인하다. 최저시급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저축은 언감생심이고, 저축을 한들 집 한 채 장만하는 일도 까마득하다. 청년이 희망을 잃는다면 미래가 없는 사회가 아니겠는가.

 

"왜 없는 사람끼리 서로 받아내려고 애쓰는가? 왜 없는 사람들끼리만 서로 물고 물려있는가?"

소설이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이 글귀를 한참 바라본다. 연대를 해도 부족할 판에 없는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원망하고 화를 낸다. 삶이 워낙 팍팍하니까 둘 사이에도 오해가 생기면서 진만은 원룸을 나가서 결국은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누군가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이 슬프다.

"너 왜 가난한 사람들이 화를 더 많이 내는 줄 알아? 피곤해서 그런 거야. 몸이 피곤해서.... 몸이 피곤하면 그냥 화가 나는 거라구."

 

<눈감지 마라>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해 주는 작품이다. MZ세대니 청년세대니 하는 말들이 담지 못하는 쓰라린 현실을 보여준다. 이 두 젊은이를 보면서 '기본소득'이라는 화두가 떠올랐다. 어느 분야든 열심히 일을 하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권리는 보장해 주어야 하지 않는가. 여러 모로 착잡하게 읽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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