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리고 봄

샌. 2024. 3. 16. 10:49

조선희 작가의 따끈따끈한 소설이다. 소설의 무대가 2022년으로 작금의 정치 상황을 앓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이 당선되었고 그를 반대한 사람들은 집단우울증에 빠졌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TV 뉴스를 보지 않게 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정희와 영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딸 하민은 3번을 찍었고, 아들 동민은 소위 '2찍'이었다. 정치에 관심이 많은 부부니 가족 사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리고 봄>은 이런 부모 자식간의 갈등에 더해 청년 세대의 진로와 취향, 퇴직 후의 생활 등의 우리가 보편적으로 겪는 문제를 경쾌한 필치로 다룬다.

 

정희는 기자 출신의 엘리트 엄마이고, 영한은 은퇴한 전직 교수다. 하민은 커밍 아웃하고 동성 연인과 함께 독일로 떠났고, 동민은 아빠와 갈등 끝에 가출해서 인디밴드 활동을 하다가 망하고 다시 집에 들어왔다. 소설은 봄-정희, 여름-하민, 가을-동민, 겨울-영한으로 나누어 각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다시 돌아온 봄은 정희 몫이 된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쩌면 평범한 한 가정의 사연이 진솔하게 펼쳐져서 누구나 공감하며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딸 하민이 튀르키예 출신 동성 연인과 결혼하겠다고 통보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진보 지식인다웠다. 정희와 영한은 색다른 딸의 결혼 파티에도 기꺼이 참석하려고 한다. 나를 감정이입하며 이 소설을 읽었지만 이 부분에서는 두 사람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둘은 나와 비슷한 세대이지만(같은 70년대 학번) 자식을 대하는 열린 마음은 비교가 많이 되어 부끄러웠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자식이 어느 집에나 있다. 이 가족에게는 아들 동민이 그러했다. 교수였던 영한의 입장에서 보면 책을 읽지 않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아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부자간에 갈등이 증폭되다가 관계 단절로까지 이어진다. 동민은 가출해서 부모와 소식을 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 활동을 하며 지낸다. 그 뒤에 다시 봄이 찾아오는 과정이 작가의 유머러스한 필체로 따스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지만 배경에는 현재의 정치적인 상황이 깔려 있다. 도대체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대통령으로 뽑혔다. 작가의 말처럼 난폭 운전하는 버스의 승객이 되어 멀미를 하면서 앉아 있는 상황이 되었다.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걸 쓴다." 이런 답답함을 작가는 소설로 해소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작가는 변증법적으로 진행되는 역사에서 위안을 얻는다. 과거에 양 극단으로 치달았던 정치적 갈등을 독일은 해결했고 아프간은 실패했다. 작가는 독일의 사례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보는 것 같다. 독일은 현재의 우아한 정치제도가 최악의 흑역사인 나치를 겪고서 만들어졌다. 민주주의가 바닥을 치고 있는 우리의 현재가 변화의 지렛대가 되어 성숙한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소설의 제목인 '그리고 봄'이 암시하는 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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