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삼체

샌. 2024. 3. 26. 11:28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흥미롭게 본 SF 8부작 드라마다. 초반에 나오는 1960년대의 중국 문화대혁명 묘사가 압도적이어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 되었다. 칭화대 물리학 교수가 상대성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장면인데 끔찍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딸이 결국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삼체(三體, 3 Body Problem)'란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항성이 셋인 시스템을 뜻한다. 이곳에서 문명을 발전시킨 삼체인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지구로 향한다. 드라마에 보여진 것으로는 엄청난 기술을 가진 초고도 문명이다. 특히 양성자를 펼쳐 만든 '지자(智者, Sophon)'로 지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설정은 압권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구까지 오는 데는 속도의 한계로 400년이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에 지구의 과학 발전을 방해해야 하고, 반대로 지구에서는 삼체인에 맞설 준비를 해야 한다. 이런 갈등 구조가 드라마의 서사를 이룬다.

 

드라마 '삼체'는 기존의 SF 영화와는 다른 결을 보여준다.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지구인의 모습에서 벗어나 400년의 시차를 둔 외계인과의 접촉과 대결이다. 수준이 다른 문명을 만날 때 소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철학적인 질문도 던진다. 삼체인이 보낸 VR 게임에서 보여지는 고대 중국과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화면은 볼 만하다. 나노섬유, 수백 개의 핵폭발 동력을 이용한 우주선 등 여러 첨단 과학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엄청난 기술을 가진 삼체인이 지구인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You are bugs." 지구 문명을 벌레 수준으로 폄하할 정도라면 어차피 게임이 되지 않는 싸움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만들어지자면 그들도 엉성한 구석을 보여야 한다. 아쉽게도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 중 하나다. 

 

'삼체'는 중국의 류츠신 작가가 쓴 소설을 드라마로 만든 것이라 한다. 이 8부작 드라마는 전체 내용의 1/3에 해당해서 앞으로 추가 시리즈가 나올 것 같다. '삼체'는 외계인과의 조우를 다룬 색다른 드라마로 앞으로의 이야기 전개가 더욱 기대된다. 드라마의 흥미를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은 뒤로 미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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