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감수성 / 백무산

샌. 2012. 4. 17. 11:09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전재산

십억이 넘는 돈을 모교인 국립서울대학교에 기부하고 갔습니다

살아 계실 때 온화한 모습 그대로

 

얼마 뒤 부산 사는 진순자(73) 할머니는 군밤장수 야채장사

파출부 일을 하며 평생 모은 일억 팔백만원을 아프리카 최빈국

우간다 굶주려 죽어가는 어린아이들에게 보냈습니다

"우리도 굶주려 원조 받아 공부도 하고 학용품도 사고 그랬단다.

우간다 아이들아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 당부도 담아서

 

농사짓고 공장 일 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에서

시를 공부하다 나온 얘기였는데

누가 내게 물었습니다

둘의 차이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나는 계급성이라고 말하려다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계급적 감수성이라고 말하려다

생명의 감수성이라고 말했습니다

 

감수성은 윤리적인 거라고 말하려다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라고 말했습니다

 

     - 감수성 / 백무산

 

<그 모든 가장자리>라는 백무산 시인의 새 시집이 나왔다. 이 시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는 TV 프로그램인 '개콘'의 한 코너인 '감수성'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감수성에 있는 장군들은 감수성이 풍부했으니....'로 시작되는데, 전쟁터와 감수성을 연결시킨 게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본다.히틀러는 악기 연주를 즐겼고, 꽃을 잘 그리는 화가였다. 스탈린도 어린아이를 사랑했으며, 볼쇼이 오페라와 영화의 광팬이었다고 한다. 하긴 사기꾼들이라고 그런 감수성이 없으라는 법은 없겠지.

 

'제길, 감수성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염치야.'라는 시인의 말에 동감한다. 염치(廉恥)란 부끄러워할 줄 아는 마음이다. 제도권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염치 있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 진정한 감수성은 어쩌면 그 반대일지 모른다. 우리의 지도자는 전에 강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강은 아직도 개발할 여지가 많아." 관점의 차이로 보기에는 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이런저런 세태를 보면서 생명과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진 세상을 한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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