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 29

꽃향기 감미로운 보탑사

충북 진천에 있는 보탑사(寶塔寺)는 꽃 속에 묻혀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이만큼 정성들여 예쁘게 꾸며놓은 절을 만난 건 보탑사가 처음이다. 절 전체가 꽃동산이고 꽃향기로 감미롭다. 보탑사는 연곡사지(蓮谷寺址)로 추정되는 고려시대 절터였던 곳에 비구니 스님 세 분이 1996년에 창건했다. 고풍스러운 맛은 없지만 꾸밈이 자연스럽고 단아하다. 비구니 스님의 곱고 섬세한 마음이 이렇게 예쁜 절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꽃을 닮아가 표정이 맑고 밝아진다. 사람들 얼굴이 꽃처럼 화사하다. 이렇게 아름답게 가꾼 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다. 보탑사는 불교와 꽃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보기 드문 절이다. 절 중앙에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3층 목탑이 있는데 주변의 꽃들..

꽃들의향기 2011.09.28

장자[181]

거백옥은 지난 육십 년 동안 육십 번 변했다. 미상불 시작은 옳다고 했으나 끝에는 버리면서 그르다고 한다. 지금 옳다고 하는 것을 오십구 년 후에는 그르다고 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만물은 모두 생명을 가지고 있으나 그 뿌리는 볼 수 없다. 출현한 것은 있는데 그 문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지혜가 알고 있는 것을 존중할 뿐, 자기 지혜가 알지 못하는 것을 믿을 줄을 모른다. 그렇다면 지식이란 가히 큰 의혹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거伯玉行年六十 而六十化 未嘗不始於是之 而卒黜之以非也 未知 今之所謂是之 非五十九年非也 萬物有乎生 而莫見其根 有乎出 而莫見其門 人皆尊其知之所知 而莫知恃其知之所不知 而後知可不謂大疑乎 - 則陽 5 거백옥은 군자의 삶을 산 모범적인 인물이다. 공자의 동시대 사람으로 공자도..

삶의나침반 2011.09.27

보탑사 느티나무

진천에 있는 보탑사는 야생화 속에 묻혀 있는 예쁜 절이다. 절을 찾으면 잘 생긴 느티나무가 제일 먼저 맞아준다. '보련산 보탑사(寶蓮山 寶塔寺)'라고 적힌 일주문 앞에 있다. 그러나 관리인이 연곡리 마을 이장으로 되어 있는 걸로 보아 절에 속한 나무는 아닌 것 같다. 수령이 300 년 정도 된 나무는 한창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균형 잡힌 단정한 모습이 사람으로 치면참한 미인이라 할 수 있다. 키는 18 m, 줄기 둘레는 5.3 m다. '보탑사 느티나무'라는 시조 한 수가 눈에 띈다. 보련산 깊숙이 와 터 잡은 삼백여년 보탑사도 세상도 다 품은 줄 알았는데 지는 해 그것마저도 툭 놓치고 마는 봄날 - 보탑사 느티나무 / 문순자

천년의나무 2011.09.27

진천 농다리와 배티성지

아내와 진천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갔다. 퇴직한 후 일곱 달이 지났지만 함께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무엇에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 여유가 없었다. 진천 농다리[籠橋]는 중부고속도로를 다닐 때 곁눈질로 보기만 했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오늘에야 찾아가게 되었다. 직접 밟아보니 돌로 만든 다리는아주 튼튼했다. 장마가 져도 무너지지 않는다니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더구나 고려 초기에 처음 만들어졌다니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다리다. 다리는 길이가 94 m, 폭이 3.6 m다. 그런데 이곳 암석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띄는 게 특이하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쉼터,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초평저수지도 나온다. 그러나 산에 ..

사진속일상 2011.09.26

축의 시대

[The Great Transformation]에는 ‘종교의 탄생과 철학의 시작’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종교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카렌 암스트롱((Karen Armstrong)의 저작이다.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축의 시대’(Axial Age)라 부른 시기는 BC 900년에서 BC 200년 사이다. 이때에 세계의 네 지역에서 인류의 정신에 자양분이 될 위대한 지혜가 태어났다. 중국의 유교와 도교, 인도의 힌두교와 불교, 이스라엘의 유일신교, 그리스의 철학적 합리주의가 그것이다. 축의 시대는 역사상 지적, 심리적, 철학적, 종교적 변화가 가장 생산적으로 이루어졌고, 인류 의식이 한 단계 성숙해진 창조의 시기였다. 우리는 영적 천재들이 살았던 축의 시대의 통찰을 넘어선 적이 없다고 저자는 ..

읽고본느낌 2011.09.26

둥근 발작 / 조말선

사과 묘목을 심기 전에 굵은 철사 줄과 말뚝으로 분위기를 장악하십시오 흰 사과 꽃이 흩날리는 자유와 억압의 이중구조 안에서 신경증적인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곁가지가 뻗으면 반드시 철사 줄에 동여매세요 자기성향이 굳어지기 전에 굴종을 주입하세요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억제입니다 원예가의 눈높이 이상은 금물입니다 나를 닮도록 강요하세요 나무에서 인간으로 퇴화시키세요 안된다, 안된다, 안된다 부정하세요 단단한 돌처럼 사과가 주렁주렁 열릴 것입니다 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억누르세요 뺨이 벌겋게 달아오를 것입니다 극심한 감정교차는 빛깔을 결정합니다 폭염에는 모차르트를 우기에는 쇼스타코비치를 권합니다 한 가지 감상이 깊어지지 않도록 경계하세요 나른한 태양, 출중한 달빛, 잎을 들까부는 미풍 양질의 폭식은 ..

시읽는기쁨 2011.09.25

어섬에서 경비행기를 타다

경비행기 조종이 취미인 친구가 있다. 오전에는 서울대공원 산림욕로를 걷고, 오후에는 친구를 따라 어섬 비행장에 갔다. 친구가 타는 비행기는 'X-Air'인데 무게가 300 kg밖에 안 나가는 경비행기 중에서도 최경량에 속한다. 엔진과 프로펠러가 위에 달려 있는 특이한 모양이다.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새로운 경험을 위해 옆 자리에 앉았다. 다른 친구는 끝내 사양했다. 어섬 비행장은 경기도 화성에 있다. 예전에는 바다였지만 시화방조제가 만들어진 후 육지로 변했다. 넓은 간척지를 비행장으로 사용한다. 경비행기 클럽이 여럿 있는데 친구는 한국비행교육원(KFEC)에서 교육을 받았다. 덩치가 작아선지 가볍게 이륙했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육지 쪽으로 향했다. 고도는 약 200 m, 속력계는 시속 50 mile을..

사진속일상 2011.09.25

올림픽공원 나홀로나무

올림픽공원에 작고 귀여운 나무가 하나 있다. 넓은 잔디밭에외롭게 서 있어 '나홀로나무', '왕따나무'로 불린다. 푸른 하늘, 초록색 잔디와 잘 어우러져 사진 찍는 사람들의 좋은 피사체 역할을 한다. 하늘의 구름만 잘 만나면 나도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을것 같다. 이 나무는 올림픽공원 9경 중 제 6경에 속한다. 아쉽게도 나무에는가까이 갈수 없다. 그러나 덕분에 시원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무에 대한 정보는 아는 게 없지만,수종은 겉모양으로 보아 향나무로 추정된다. 아래 사진은 전에 찍었던 것이다. 2002. 9. 20 2005. 2. 13

천년의나무 2011.09.23

올림픽공원 은행나무

올림픽공원 몽촌토성 위에 큰 은행나무가 있다. 초록 잔디밭 위에 홀로 서 있어 더욱 위풍이 당당하다. 그러나 어떤 때는 쓸쓸하게 보이기도 한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나무는 고립된 섬이다. 이 나무를 관리하는 체육진흥공단에 부탁한다. 나무 쪽으로 길을 내주고 나무 밑에는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를 마련해주면 좋겠다. 그런다고 나무의 성장에 지장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연인들의 속삭임을 듣고,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주며, 나무도 흐뭇해 할 것 같다. 이 나무는 키가 17.5 m, 줄기 둘레는 6 m다. 나이는 500 살이 넘었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자태가 멋진, 올림픽공원의 랜드마크 나무다.

천년의나무 2011.09.23

장식용 에어컨

에어컨이 장식용으로 전락했다. 올해 큰 맘 먹고 에어컨을 샀는데 한 번도 틀어보지 못하고 여름이 지나갔다.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았고 중부 지방에는 큰 더위가 찾아오지 않았다. 열대야도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새로 이사 온 이곳은 교외 지역이라 도심과 달리 공기 자체가 시원하다. 여름에 피서를 간 것도 아니고 내내 집에 있었는데 에어컨이 아니라 선풍기 신세도 별로 지지 않았다. 9월의 늦더위로 정전이 되고 난리가 났지만 그때도 덥다는 걸 몰랐다. 그래서 겨울이 은근히 걱정이 된다. 겨울바람은 무척 세고 찰 것 같다. 이곳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혜택이 맑은 공기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강원도 심심산골에 비하지는 못하겠지만 이만하면 서울 생활 40..

길위의단상 2011.09.22

잠원동 뽕나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뽕나무 고사목이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다. 대략 조선 초기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잠실이라는 명칭이 넓게 사용된 것으로 보아 한강 남쪽은 양잠이 성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왕가에서 누에를 기르고 보급하기 위한 신잠실(新蠶室)이 있던 곳이다. 서울시로 편입되기 전 지명이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다. 원래 뽕나무는 죽어 두 줄기의 형태만 남아 있다. 아이를 가지길 바라는 어느 여인네의 촛불로 인해 나무가 화마를 입었다 한다. 그러나 역사적 의미 때문에 서울시 기념물 1호로 지정되어 있다. 주위에는 '나무 사랑' '문화재 보호'같은 팻말이 여기저기 걸려 있다. 바로 옆에서 자라는 뽕나무는 연대가 훨씬 뒤지만 그래도 상당한 크기다. 옛날에는 뽕나무 숲이었을 ..

천년의나무 2011.09.21

반포에서 올림픽공원까지 걷다

판사를 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고가 한 차례 연기된 뒤였다. "원고에게 부과한 세금을 취소하라!" 순간 고생했던 여주 생활과 그 후유증이 떠올라 눈물이 맺혔다. 돈보다는 내 자존에 관계되는 문제였다. 억울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먼저 아내에게 전화를 하고, 다음에 소송을 도와준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판사님, 감사합니다. 한강을 혼자 걸었다. 가을 바람이 서늘했고 하늘은 청명했다. 마음을 덮고 있던 먹구름이 사라졌다. 걷는 걸음이 가벼웠다. 한강을 오랜만에 걸었다. 옛 생각이 많이 났고 기분은 들떴다. 세상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 걸은 시간; 4 시간(11:00 - 15:00) * 걸은 거리; 14 km * 걸은..

사진속일상 2011.09.20

장자[180]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지만, 영욕으로 핍박하여 이런 병통이 생겨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생겨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子乎子乎 天下有大재 子獨先離之 曰莫爲盜 莫爲殺人 榮辱立然後覩所病 貨財聚然後覩所爭 今立人之所病 聚人之所爭 困窮人之身 欲無至此得乎 - 則陽 4 백구(栢矩)가 천하를 돌아다니던 중 제나라에서 형벌을 받고 버려진 시체를 보았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이런 일은 흔했을 것이다. 그러나 백구는 시신 곁을 떠나지 못한다. 슬픔과 울분을 느낀다. 시체를 수습해 묻어주고 하늘..

삶의나침반 2011.09.19

고독의 능력

친구와 등산을 하고 내려와 작은 마을을 지날 때였다. 어느 허름한 집 앞에서 노인이 의자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자세로 보아 아마 하루 종일 그렇게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앞을 지나가도 별 반응이 없었다. 친구가 말했다. “늙어서 저렇게 될까봐 두려워.” 그러나 노인에게는 노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 없을까. 쇠약하고, 일을 못하고, 외롭다는 게 저주일까. 흘러가는 구름을 보고, 꽃에 찾아드는 나비를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게 꼭 쓸쓸하기만 한 걸까. 저 노인은 혼자만의 여유와 고독을 즐기는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일과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바쁘고, 젊고, 새로운 것을 찬양한다. 또 그런 관점에서 인간이나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한다. 게으르고 낡은 것은 부덕이다. 외로움과 고독도..

참살이의꿈 2011.09.18

고향집 설악초

여름이면 고향집은 설악초로 환해진다. 이웃은 '하얀꽃집'이라고 부른다. 마을에 있는 설악초는 모두 우리 집에서 분양되어 간 것이다. 어머니는이 꽃을 야광초라고 한다. 밤에는 유난히 빛이 나듯 희게 보이니 야광초도 좋은 이름이다. '설악'은 영어 이름인 'Snow on the mountain'을 의역한 것으로 보인다. 설악초는 미국이 원산지로 설악산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꽃잎처럼 보이는것은 잎이다. 잎이 꽃잎처럼 변한 것은 벌과 나비를 많이 끌어모으기 위한 설악초의 위장 전술이다. 그래선지 설악초에는 곤충이 많이 모여든다. 설악초의 꽃잎은 아주 작다. 꽃잎은 넉 장인데 핀 모양이 재미있다. 이가 빠진 듯 한 쪽을 비워두고 비대칭으로 피어 있다. 언뜻 보면 다섯 장에서 하나가 떨어져 나간 것 같다. 고향 ..

꽃들의향기 2011.09.17

어느 노생물학자의 주례사 / 이가림

오늘 새로이 인생의 첫걸음을 내딛는 신랑과 신부에게 내가 평생 실험실에서 현미경으로 기생충을 들여다본 학자로서 짧게 한마디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말미잘이 소라게에게 기생하듯이 그렇게 상리공생(相利共生)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개미와 진딧물, 콩과 뿌리혹박테리아 그런 사이만큼만 사랑을 해도 아주 성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해삼과 숨이고기처럼 한쪽만 도움 받고 이익을 보는 편리공생(片利共生)하지 말고 서로가 서로의 밥이 되는 아름다운 기생충이 되세요 이상 - 어느 老생물학자의 주례사 / 이가림 사랑은 노력과 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기술이라고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쉼 없는 훈련과 연습이 필요하듯 사랑도 마찬가지다. 이성에게 끌리는 호기심이나 열정은 사랑이기보다는 연..

시읽는기쁨 2011.09.16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지구라는 ‘타이타닉호’에 타고 있는 우리들은 빙산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선내방송에서 몇 번이나 “빙산에 부딪힙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왔다. 그 말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그 얘기?”라고 반문한다. 현실적인 경제학자는 타이타닉호에 “전속력으로!” 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재난은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이미 차례차례 빙산에 부딪치고 있는 중이다. 는 우리에게 저 위험한 바다를 보라고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타이타닉호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발전 이데올로기는 1949년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서 처음 제시되었다. 미개발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 경제적 원조를 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정책이었다. ‘미개발 국가’라는 용어도 이때..

읽고본느낌 2011.09.15

장자[179]

옛날 내가 농사를 지을 때 밭을 얕게 갈았더니 그 결실도 역시 나에게 얕은 만큼 보답했다. 김매기를 풀 베듯 소홀히 했더니 결실도 나에게 소홀한 만큼 보답했다. 나는 이듬해에 농사법을 바꾸어 밭갈이를 깊이 하고 호미질을 자주 하였더니 벼가 번성하고 결실이 좋아 한 해 양식이 넉넉했다. 昔予爲禾 耕而로망之 則其實亦로망而報予 芸而滅裂之 則其實亦滅裂而報予 予來年變齊 深其耕 而熟우之 其禾繁而滋 予終年厭殖 - 則陽 3 마음을 밭에 비유하는 것은 동서고금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성경에도 씨 뿌리는 사람을 비롯해 마음을 밭에 비유하는 예수의 말이 여러 군데 나온다. 선조들은 아예 ‘마음밭[心田]’이라고 불렀다. 게을러 밭을 얕게 갈면 결실도 그만큼 작다. 소홀히 하면 소홀히 보답하는 게 농사다. 마음 농사도 이와 다..

삶의나침반 2011.09.14

내가 제일 부러운 건

내가 제일 부러운 건 형제간에 우애 있는 집이다. 그런 집을 보면 질투가 날 정도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집을 보면 동병상련을 느낀다. 명절이나 잔치 등 가족과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 싫다. 다른 사람 대하기에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 집안의 내력인지 선대 때도 그랬다. 같은 마을에 살면서도 형제간에 왕래가 없었다. 만나면 친척 사이에 싸우고 큰소리치는 걸 자주 보며 컸다. 친가나 외가 쪽이 다 마찬가지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보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형제 사이가 남만도 못하다. 이런 집들은 내 탓이오, 보다는 주로 남 탓을 한다는 게 공통점이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가 어쩌면 혈연관계인지 모른다. 가까..

길위의단상 2011.09.14

비에 젖은 추석

비가 많은 해다. 고향에 내려가 있은 추석 연휴 동안에도 내내 비가 오락가락했다. 시골집에 내리는 빗소리는 요란하다. 야성의 소리다. 첫날 밤은 사나운 낙수 소리에 여러 차례 잠을 깼다. 백 년도 못되는 짧은 인생이지만 누구나 삶의 신산을 맛봐야 한다.큰 병만고통이 아니다. 손톱 밑의 가시가 도리어 당사자에겐 견디기 힘든 아픔이 될 수가 있다. 연민의 눈으로본다면 이해 못 할 일도, 사람도 없다. 이 세상에 나서 아름다운 일은 그대를 믿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송편 빚어 가마솥에서 찌는 풍경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집과 동네는 썰렁하다.외지에 사는 자식들 휭 하니 왔다가 휭 하니 사라진다. 따스한 정을 나누기보다는 서로 스트레스 받고 상처를 주고받는 게 현실의 가족 관계가 아닌가...

사진속일상 2011.09.13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 신석정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깊은 삼림지대를 끼고 돌면 고요한 호수에 흰 물새 날고 좁은 들길에 들장미 열매 붉어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 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그 나라에 가실 때에는 부디 잊지 마셔요 나와 같이 그 나라에 가서 비둘기를 키웁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길 솟는 옥수수밭에 해는 저물어 저물어 먼 바다 물소리 구슬피 들려오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어머니, 부디 잊지 마셔요 그때 우리는 어린 양을 몰고 돌아옵시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오월 하늘에 비둘기 멀리 날고 오늘처럼 촐촐히 비가 내리면 꿩 소리도 유난히 한가롭게 들리..

시읽는기쁨 2011.09.09

이삭여뀌

어린 시절 이맘때면고향 강가나 논둑,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것이 여뀌 종류였다. 강이나 들로 나가는 길을 가득 덮어서 무척이나 귀찮았던 풀로 기억된다. 잡초라고 부르며 흘대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다시 만나는 여뀌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여뀌 종류만도 무려 33종이나 된다. 여뀌, 개여뀌, 털여뀌, 흰여뀌, 물여뀌, 봄여뀌, 가시여뀌, 기생여뀌, 버들여뀌, 이삭여뀌, 장대여뀌, 명아자여뀌..... 서로간에 차이가 작아 어떤 것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런 미세한 차이에 신경을 쓰는 일인 것 같다. 여뀌 중에서도 이삭여뀌는 특이하다. 유난히 긴 줄기에 붉은 꽃이줄지어 달려 있다.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줄기를 길게 뻗었다. 성기게 달린 꽃은 좁쌀만큼 작다. 멀리서 보면 열매 ..

꽃들의향기 2011.09.09

우리의 일상

통치를 받는다는 것은 활동할 때마다 그리고 거래할 때마다 기록되고, 등록되고, 과세되고, 날인되고, 측정되고, 숫자가 매겨지고, 평가되고, 허가되고, 인가되고, 경고를 받고, 금지되고, 선도되고, 교정되고, 처벌받는 것이다. 그것은 공익이라는 구실 아래 그리고 일반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기부금 납부를 강요받고, 훈련을 받고, 배상금을 물고, 착취당하고, 독점의 희생자가 되고, 탈취당하고, 쥐어짬을 당하고, 현혹되고, 강탈당하는 것이다. 사소한 저항을 하기만 해도, 불만의 '불'자만 꺼내도 억압당하고, 벌금이 부과되고, 멸시당하고, 괴롭힘을 당하고, 추적되고, 학대를 받고, 구타를 당하고, 무장해제되고, 질식당하고, 투옥되고, 재판을 받고,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당하고, 추방되고, 희생되고, 팔려가고..

참살이의꿈 2011.09.08

해오라비난초

야생화에 관심을 가진지 십수 년, 그동안 가장 만나고 싶었던 꽃 중의 하나가 해오라비난초였다. 도감이나 사진을 통해서 이 꽃을 보고는 직접 대면하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러나 멸종 위기의 희귀종이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자생지가 우리나라에서 몇 군데 되지 않는다. 꽃이 워낙 특이하고 아름다워 인간의 손에 남아나지 못한 탓이다. 율봄식물원에 갔다가 우연히 이 꽃을 발견하고 환호작약했다. 야생 상태는 아니지만 드디어 소원을 이룬 것이다. 사진에서본 그대로꽃은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해오라기가 날아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해오라비난초다. 순백의 꽃은 해오라기보다는 백로를 연상시키지만 바람에 한들거리기라도 하면 정말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새와 똑 같다. 해오라비난초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꽃말은 '꿈속에서라도..

꽃들의향기 2011.09.07

파리풀

여름이면 산과 들에 흔하게 피어난다. 그러나 꽃이 작아 자세히 바라보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사진도 마크로 렌즈가 아니면 찍기 어렵다. 그러나 아무리 작아도 꽃은 꽃이다.작아서 더욱 귀엽고 예쁘다. 뿌리를 찧어 나온 진액으로파리를 잡는데 썼다고 파리풀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종양 등을 치료하는 약제로도 쓰인다. 파리에게는 독초이지만 사람에게는 약초다. 그래서 한자 이름이 파리 '승', 독 '독'을 써서 승독초(蠅毒草)다.

꽃들의향기 2011.09.06

자신의 현실을 껴안는 것이 행복이다

마음은 아직 허공에 떠있다. 허전하고, 고맙고, 부끄럽다. 큰일을 치른 후유증인지 쓸쓸하고 우울한 기분이 오래 이어진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인가 보다. 세상살이가 어찌 내 입맛대로 될 것인가. 체념도 인생을 사는 지혜 중 하나다. 행사를 치르며 이런저런 인생 공부를 많이 했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자. 신달자 시인의 행복에 대한 정의가 오늘은 마음에 와 닿는다. “자신의 현실을 껴안는 것이 행복이다.”

참살이의꿈 2011.09.05

자전거 / 고은

수유리 안병무네 집 마당에서 초례 마치고 한강가에서 하룻밤 자고 안성 대림동산으로 왔다 상화 남편은 얼간이 성화는 철부지 축의금 봉투를 꺼내보았다 이백만원 얼마 상화 상화 남편 둘이 지닌 것 털어 집을 샀으니 화곡동 집 팔리지 않고 억지로 집을 샀으니 이백만원 얼마 이것으로 살아야 했다 마음속 화수분이라 무어나 차고 무어나 넘쳤다 마음 밖 가난이라 전화도 없다 전화 걸려면 십분쯤 가서 고개 너머 관리사무소 전화를 빌려야 한다 민음사에서도 문익환도 전보로 급래급래를 알려왔다 이백만원 얼마는 곧 동났다 안성장에 가 빗자루 사고 삽도 호미도 샀다 개수대 그릇도 샀다 빈털터리인데 창비에서 원고료가 왔다 살았다 살았다 무턱대고 자전거 한 틀을 샀다 자전거에 상화를 태우고 상화 남편은 견마를 잡혔다 삼단 자전거 바..

시읽는기쁨 2011.09.02

노랑물봉선

전에 남한산성 아래 살았을 때는 여름이면 물봉선을 흔하게 보았다. 남한산성에 넓은 물봉선 군락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사를 하고 난 뒤에는 물봉선 보는 것도 드물어졌다. 얼마 전에 남한산성을 다시 찾았을 때 그때 군락지를 가보았지만 아쉽게도 사라지고 없었다. 만났다 헤어지고, 있다가 없어지고, 하는 것은 꽃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뒷산을 산책하다가 새로운 물봉선 군락지를 만났다. 산 정상 부근의 습기 많은 지역이었다. 물봉선은 분홍색, 노란색, 흰색의 세 종류가있다. 물봉선, 노랑물봉선, 흰물봉선이라 부른다. 내가 본 바로는 눈에 띄는비율이 대략 7:2:1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노랑물봉선이 대세인 게 특이하다. 바로 옆에 골프장이 있는데 너희들은 인간의 화를 입지 말고 오래도록 잘..

꽃들의향기 201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