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나무 654

화산리 반송

문경시 농암면 화산리에 있는 이 반송은 국도에서 마을길을 따라 들어가면 나온다. 주변으로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 풍경이 펼쳐진다. 이 나무는 산 속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군계일학이라고 할까, 다른 나무들에 비해 우뚝한 기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하늘로 뻗어올라간 기세가 힘차고 아름답다. 줄기가 여섯 개로 갈라져서 육송(六松)으로 부른다는데 지금은 네 개의 큰 줄기만 남아있다. 나무의 높이는 24m, 가슴높이의 둘레는 약 5m이다.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400년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책에는 200년으로 나와 있다. 나무의 나이는 추정치인 만큼 보는 사람에 따라서 오차가 심할 수밖에 없다. 나무와의 첫 만남은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추억을 남긴다. 행복했던 추억은 삶을 따스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이 화산..

천년의나무 2007.12.21

말무덤 무송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에는 연주패옥(連珠佩玉)의 전설이 깃든 말무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 부대의 술사였던 두사충(杜思忠)은 이곳에서 '연주패옥'이라 불리는 명당을 발견했다고 한다. 구슬을 꿰고 옥을 단다는 뜻의 이 명당에 묘를 쓰면 그 집안에 금관자, 옥관자를 단 정승 판서 벼슬이 수없이 나온다고 한다. 이 천하제일의 명당을 두사충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정탁(鄭琢, 1526-1605))에게 전해줄 생각으로 남몰래 정탁의 하인에게 이 명당 자리를 알려주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정탁이 세상을 뜨자 정탁의 아들은 아버지가 묻힐 명당을 찾아 하인과 함께 이곳까지 왔다. 그런데 이 마을 동구 밖에 도착했을 때 불행히도 그 하인의 말뒷발에 차여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아들은 몹시 억울하고 분하여 ..

천년의나무 2007.12.15

장수황씨종택 탱자나무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는 장수황씨종택이라는 고가가 있다. 이 집은 황희 정승의 현손인 황시간(黃時幹, 1558-1642)이 거주했다고 하는데, 집은 아마도 그때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경지방의 대표적인 양반가옥으로 여기서 서애 유성룡도 공부를 했다고 한다. 이 집 정원에 오래 된 탱자나무가 있다. 집을 지을 때인 1500년대 말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령이 400년이 넘는다. 정원에 탱자나무를 심은 것도 특이하고, 그리고 이렇게 큰 탱자나무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강화도의 탱자나무들보다 수세는 훨씬 더 좋다. 강화도 쪽은 아마 지형적인 의미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 같다. 집에 들어서니 이웃분이 오셔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 ..

천년의나무 2007.12.15

대하리 반송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 있는 이 반송은 높이가 6 m, 줄기 둘레가 3 m, 옆으로 퍼진 길이는 20 m에 이른다. 나이는 4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른 반송과 달리 마치 처진소나무처럼 옆으로 퍼진 것이 특징이다. 나무는 줄기나 가지 모두 용트림 하듯이 구불구불해서 신비한 느낌을 더해준다. 장수 황씨의 종중 소유라는데나무 옆에는 '거송식당'이라는 큰 음식점이있다. 이 나무를 찾아가며 사람들한테 물었더니 "아, 그 거송요. 쭉 가다가 거송식당을 찾으세요. 바로 옆에 있어요." 한다. 나무 따라 식당도 유명해진 것 같다. 다행히 이 나무는 철책을 두르지 않아 가까이 가서 안아볼 수 있었다. 찬 날씨였어도 나무를 안으면 따스하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속삭인다. "너와 나는 한 몸이야!"

천년의나무 2007.12.10

통의동 백송

서울 종로구에 있었던 통의동 백송은 지금은 없다. 한때는 우리나라 백송 중에서 가장 크고(높이 16m, 둘레 5m), 수형이 아름다웠던 나무였으나 1990년 7월에 닥친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되었다. 지금 그 터에는 죽은 그루터기만이 남아 옛날의 흔적을 유추해 볼 수 있을 따름이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청와대 가까이에 있는 이 나무가 죽는 것은 불길한 징조라 하여 나무를 살려내라고 지시했다 한다. 서울시는 '백송회생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나무가 쓰러진 상태에서 살려내기로 하고 경찰관을 배치하여 보호했다. 다음 해에 새싹이 나는 등 살아날 조짐이 보였으나,누군가가 나무에 제초제을 뿌리는 사고가 생겨 결국 죽었고 1993년 5월에 나무는 잘려 나갔다고 한다. 이 나무의 수령이 600년이었다고 알려져 있..

천년의나무 2007.11.23

창덕궁 뽕나무

농상(農桑)이라는 말이 있듯 옛날에는 농사 짓는 일과 누에 치는 일이야말로 무척 소중했다. 둘 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용품인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를 생산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에치기는 요사이로 말하면 섬유산업에 해당된다. 그래서 궁궐에서 뽕나무를 만나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창덕궁에는 수령이 400 년 된 뽕나무가 있다. 높이가 12 m, 둘레가 2.3 m에 이르는데 이만한 뽕나무는 궁궐에 있는 것으로는 가장 크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예전에는 창덕궁에 거의 천여 주의 뽕나무가 심어져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양잠을 장려하기 위해서 행한 행사가 친잠례(親蠶禮)인데, 궁에서는 왕비가 직접 뽕잎을 따고 누에에게 먹이는과정을 시연했다. 백성들에게 시범을 보이기 위한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창덕궁에 남..

천년의나무 2007.11.22

창덕궁 향나무

창덕궁 서편에 천연기념물 194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궁궐이나 사찰에서는 이런 오래된 향나무를 볼 수 있는데, 강한 향기를 가지고 있는 향나무가 귀하게 취급 받은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실용적으로도 제례용으로 쓰이는 향을 충당하기도 했을것이다. 옆에 있는 선원전(璿源殿)이 역대 임금을 위한 제례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 향나무는 수령이 750년으로 추정하며, 높이는 12m, 줄기 둘레는 6m에 이르는 우람한 나무다. 마침 옆을 지나던 외국인이 "Oh, my God!" 하며 감탄을 하며 다가왔다. 향나무 특유의 용트림 하듯 가지가 뒤틀린 모습 하며, 이 향나무의 우람하고 당당한 밑줄기는 그런 감탄사가 충분히 나올 만하다. 비록 무거워진 몸을 철제 기둥에 의지하고는 있지만 노거수의 위용 ..

천년의나무 2007.11.17

창덕궁 다래나무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머루랑 다래랑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 청산별곡은 일부 외우지만 그러나 부끄럽게도 실제머루와 다래를 구별하지는 못한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머루, 다래를 잘 모른다. 나에게는 산에서 그 열매를 따먹고 논 기억이 별로없다. 창덕궁에는 엄청나게 크고 오래된 다래나무가 있다. 안내문에 보면 수령이 650년이 되었고, 굵은 줄기 둘레가 72cm에 길이가 20여 m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다래나무다. 그리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다래나무는 이것이 유일하다. 3층 높이에 해당되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휘감고 있는데, 원뿌리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이리저리 뒤엉켜 있어 장관이다. 마치 거대한 아나콘다를 보는 것 같다. 이 머루나무는 창덕궁 건축 ..

천년의나무 2007.11.16

홍릉수목원 백송

홍릉수목원에 갈 때면 꼭 이 백송을 찾아가서 만난다. 1938년 생이니 나이는 그리 많이 되지 않았지만 백송 자체가 워낙 희귀해 비록 큰나무는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넉넉히 눈요기가 된다. 그런데 홍릉수목원의 백송은 피사의 사탑 마냥 한쪽으로 기울어 있다. 중국 원산인 백송이 우리 기후에 잘 맞지 않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소나무 종류 중에서 가장 보기 어렵고 그래서 귀한 대우를 받는다. 천연기념물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모두 백송들이다. 예로부터 백송은 양반 중에서도 내노라 하는 집안에서만 기를 수 있었다 한다. 백송은 흰색의 수피가 특징이다. 그래서 전에는 백골송(白骨松), 백피송(白皮松)으로도 불렸다. 잎은 세 가닥이어서 다른 소나무와 구별된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잣나무에 더 ..

천년의나무 2007.11.13

수종사 은행나무

경기도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는 특이하게 창건 설화에 세조가 등장한다. 1459년, 세조가 금강산을 구경하고 환궁하는 도중 양수리에서 일박하게 되었는데, 밤에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와 알아보니소리 나는 곳에 고찰의 흔적이 있었고 바위굴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공명되어 종소리로 들린 것이었다. 그래서 새로 절을 창건하고 이름을 수종사(水鐘寺)로 했다고 한다. 수종사 은행나무는 세조가 절을 창건한 것을 기념해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무의 나이도 500여 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만한 세월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둘레가 7m에 이르는 큰 나무이다.평지가 아닌 산비탈에서 자라고 있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이 은행나무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에서 자라는 나무일 것이다. 수종사에서 바라보는 두물머..

천년의나무 2007.11.10

남대리 소나무

부석면 남대리는 큰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마을이다. 지난 번에 마구령을 넘으려고 잠시 지나쳤는데, 옛 흔적을 찾아보려 했지만 시간 여유가 없어서 찬찬히 둘러보질 못했다. 지금은 40 가구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의 남대리는 200 가구 이상이 모여 사는 큰 동네였다고 한다. 소백산맥 넘어 부석장을 보러 오가는 장꾼들이 하룻밤을 묵거나 쉬어 갔을 터으므로 주막집들도 여럿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주막거리의 흔적은 남아 있다. 옆으로는 남대천이 흐르고, 새로 포장된 현대식 아스팔트 도로가 지나가는 길에 깔끔하게 정리된 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굉장히 신경을 쓴 정성이 느껴지지만 남대리라는 이미지와는 맞지 않아 조금은 곤혹스러웠다. 정비를 하는 것은 좋지만 옛 산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되었으면 더 ..

천년의나무 2007.11.06

봉원사 느티나무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봉원사(奉元寺)는 신라 시대에 도선국사에 의해 '반야사'라는 절로 창건되었다. 그 뒤 조선시대 영조대에 이웃인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이곳에 자리잡은 지는 300년 정도가 되는 셈이다. 봉원사는 우리나라 태고종(太古宗)의 총본산이다. 태고종은 해방 후 대처와 비대처 제도간의 갈등이 심할 때 대처승들이 조계종에서 분리, 독립해 나온 종단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스님의 결혼을 허락하는 유일한 종단이다. 봉원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느티나무는 밑둥 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특이한 생김새를 하고 있다. 보통 느티나무는 하나의 원줄기에서 가지가 방사형으로 뻗어나는데, 이 나무는 줄기 자체가 처음부터 갈라지고 뒤틀린 기묘한 모양이다. 마치 분재 같은 느..

천년의나무 2007.11.05

정암사 주목

정선 정암사 마당에는 재미있게 생긴 주목이 한 그루 있다. 이미 죽어 껍질만 남은 주목 안에서 또 다른 주목이 돋아나 자라고 있는 것이다. 새로 생긴 주목도 그 굵기로 보아 이미 상당한 연륜이 쌓인 것 같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고 흔히 주목을 말하는데 이 나무야말로 장수하는 주목의 생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정암사(淨岩寺)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다섯 곳의 사찰에 봉안했는데, 그중 한 곳이 이 정암사이다. 도로 옆에 있지만 절 분위기는 아늑하고 고요하다. 정암사 주목에도 전설이 전해오는데 뭇 고목들에서 들을 수 있는 것과 같은 지팡이 전설이다. 즉 자장율사가 절 창건을 기념하여 꽂아둔 지팡이가 자라난 것이라고 한다. ..

천년의나무 2007.11.04

청량정사 고사목

봉화 청량산에 있는 청량정사(淸凉精舍)는 송재 이우(1469-1517)가 조카들을 가르쳤던 건물이다. 퇴계 역시 13살 되던 해(1513)에 이곳에서 글을 배웠다. 원이름은 오산당(吾山堂)이었다고 한다. '나의 산'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청량산은 퇴계 가문에 속하는 산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청량산 일대는 퇴계와 인연이 깊다. 청량정사 바로 옆에 고사목 한 그루가 있어 그 옆을 지나는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여느 고사목과 달리 몸 전체가 검게 그을려 있어 화마의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록 불 탄 잔해지만 그 위용만으로도 감탄하게 되는데, 살아있었을 때 모습을 상상해보면 아래에 있는 청량정사와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나무에 불이 난 것이 6.25 때라고 하니까 벌써 50년..

천년의나무 2007.10.31

삼인리 팽나무

남부 지방에서는 흔하게 본다는 팽나무를 중부 지방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주위에서 잘 보지 못하니 팽나무가 눈에 익지 않다. 팽나무는 생명력이 강한 나무라고 한다. 그래서 남쪽 지방에서는 해안가의 방풍림으로도 심고, 느티나무와 함께 마을의 당산나무로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보호수로 지정된 것만 500여 그루라고 하니 은행나무, 느티나무와 함께 사랑 받고 있는 우리의 나무라 할 수 있다. 팽나무라는 특이한 이름은 바닷가에 심었다는 의미의 포구나무에서 유래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포구나무 또는 폭나무로도 불린다는데, 그 이름이 뒤에 팽나무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 고창 선운사 입구에 있는 삼인리 팽나무는 수령이 약 300년이고, 현재 고창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줄기의 둘레가 4.5m에 이르는데, 몸통에서..

천년의나무 2007.10.20

봉양리 뽕나무

예전에 농촌에서 집집마다 누에를 칠 때 가장 수난을 받은 나무가 뽕나무였다. 잎이 돋으면 몽땅 따가고, 나중에 누에가 크면 아예 가지째 잘라서 누에밥을 주었다. 키가 크면 뽕잎을 따기가 불편하므로 뽕나무는 늘 줄기가 잘리고 옆으로만 가지를 내었다. 어렸을 때는 그게 뽕나무의 본모습인 줄 알았다. 다른 나무 같이 크게 자란 뽕나무는 상상할 수 없었다. 정선군청 앞에 있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뽕나무라고 한다. 키는 25m, 나이는 600살이나 되었다. 줄기 또한 어른 두 사람이 감싸안아야 할 정도로 굵다. 어렸을 때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큰 뽕나무는 무척 신기하다. 예전에는 이 지역이 상마십리(桑麻十里)라고 불렸다니, 뽕나무가 많았던 땅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두 그..

천년의나무 2007.10.09

연주암 고사목

생명을 받은 모든 존재는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 죽음은 무섭고 두렵다. 그것은 죽음의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고통과 상실감, 공포 의식 등이 원인일 것이다. 다른 생명들도 인간만큼 죽음을 삶의 대척점으로서 의식하는지는 의문이다. 인간의 죽음은 추하지만, 나무의 죽음은 아름답고 숭고하다. 죽은 인간 몸에서는 고약한 악취가 나지만, 썩어가는 나무에서는 숲의 향기가 난다. 그리고 나무를 보면 죽는다는 것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에 되돌려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에서 받은 것을 온전히 반납하는 것이다. 죽은 나무는 다른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며 영양분의 공급원이다. 자신의 죽음으로 다른 생명들을 살린다. 나무는 죽어서 다른 생물들의 삶으로 거듭나는것이다. 오랜만에 연주암..

천년의나무 2007.09.18

개평리 소나무

함양에 있는 개평리는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비롯해 옛집들이 많이 남아있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언덕 위에 있는 이 소나무를 발견했다. 소나무는두 그루가 있는데 하나는 마을쪽으로 굽어 있고, 다른 것은 마을 반대쪽으로 굽어 있다. 둘 다 꼬부랑 할머니처럼 줄기가 거의 90도 각도로 꺾여 있다. 마을쪽으로 굽은 나무는 쇠줄에 지탱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다면 넘어져 버릴 정도로 무게 중심이 심하게 아래쪽으로 쏠려 있다. 그런데 두 번째 나무는 죽어버린 듯 줄기와 가지만 앙상하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무척 아쉽게 느껴졌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가 처진소나무에 속하며 높이 16m, 둘레3m, 가지의 폭은 21m에 이른다고 되어 있다. 크기로 봐서는 두 번째 나무 ..

천년의나무 2007.09.08

화서면 반송

우리나라의 명품 소나무 반열에 이 화서면 반송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어떤 분은 이 나무를 나라의 보배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태가 빼어난 명목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도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눈이 확 떠지는 경험을 했다. 이 나무는 상현리 마을을 내려다보는 산 언저리에 자리잡고 있다. 키는 16.5m, 줄기 둘레는 4.7m에 이르는데, 네 개의 줄기가 멋진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나무 형태를 만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탑 모양으로 생겼다고 예부터 탑송(塔松)으로 불렀다고 한다.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한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기하학적인 균형미에 있다. 이 나무 역시 우산 모양으로 경사진 각도나 전체적인 균형미가 일품이다. 훌륭한 도공이 빚어낸멋진 도자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무 둘..

천년의나무 2007.09.05

반야사 배롱나무

반야사(般若寺)는 영동군 황간에 있는 천년고찰이다. 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의상의 제자인 상원 스님이 창건했다고 한다. 절 앞에는 개천이 흐르고 작지만 저수지도 있어 물이 풍부하다. 이곳 지형이 물 위에 뜬 연꽃 모양이라는데 문외한의 눈에는 잘 확인되지 않는다. 반야사에는오래된 한 쌍의 배롱나무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조선조의 건국 당시 무학대사가 주장자를 꽂아둔 것이 둘로 쪼개져서 쌍배롱나무로 되었다고 하는데, 많은 지팡이 전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전설에근거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나무의 수령을 500년으로 추정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무 크기는 예상보다 작아 그 나이의 신빙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다만 줄기의 생김새가 만만찮은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 준다. 꽃도 많이 져서 배롱나..

천년의나무 2007.09.03

금대암 전나무

금대암(金臺庵)으로 오르는 길은 멀다. 국도에서 벗어나 가파른 1단의 산길을 3km 정도는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금대암에 서면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연봉이 눈앞에 펼쳐진다. 금대암은 지리산을 조망하는 최적의 장소로 알려져 있다. 금대암 앞에 이 전나무가 우뚝 서 있다. 키가 40m, 줄기 둘레가 3m에 이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전나무라고 한다. 추정 수령은 약 6백년이다. 전나무 자체가 그렇지만 곧게 뻗은씩씩한 기상이 배경의 지리산과 아주 잘 어울린다. 암자 아래 대숲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이 전나무에 닿을 수 있다. 밑에서 위를 바라보면 우람한 기상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러나 산 아래쪽 방향의 가지들은 많이 잘려나가 있다. 또 줄기 아래쪽에도 타원형의 큰 흉텨가 생겨 있다. 나무..

천년의나무 2007.08.31

목현리 구송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에서 네비게이션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복잡한 도시보다도 시골길의 목표물을 찾아가기가 어떤 면에서는 더 어렵다. 네비가 없었더라면 지도와 맞추며 더 힘들게애써야 했을것이다. 목현리 구송은 휴천면사무소를 목적지로 정해 놓으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들판 가운데에 홀로 서 있는 이 나무는 멀리에서도 쉽게 눈에 뜨였다. 반송인데 구송(九松)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줄기가 아홉 개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일곱 개밖에 남아있지 않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는 약 3백년 전,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진양 정씨의 학산공이심었다고 한다. 반송이 원래 멋들어진 나무지만 이 나무는 특히나 그 자태가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내 눈에는 마치 두 발을 모으고 서 있는 발레리나처럼 눈이 부시게..

천년의나무 2007.08.30

학사루 느티나무

학사루 느티나무는 함양초등학교 구내에 있다. 원래는 학사루(學士屢)가 있었으나 1979년에 함양군청 앞으로 옮겨져서 지금은 나무만 남아 있다. 이름은 옛 그대로 학사루 느티나무로 부른다. 안내문 설명에 따르면 이 느티나무는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종조인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있을 때(1471-1475) 객사인 학사루 앞에 심었다고 한다. 따라서 수령은 약 600년가까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 높이는 21m, 가슴높이 둘레는 8.3m이며, 천연기념물 407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느티나무는 균형 잡히고 단아한 모습이 우리나라 느티나무 중 최고가 아닐까 싶다. 처음 본 순간 감탄사가 절로 나올만큼 조형미가 빼어났다. 마치 옛 양반가의 귀티나는 안방마님 같은 인상이다. 긴 세월의 풍파도 이 나무를 비켜간 것 ..

천년의나무 2007.08.29

상림 사랑나무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連理枝) 또는 연리목(連理木)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이런 나무는 무척 귀하고 상서롭게 여겼던 것 같다. 특히 연리목은 그 모양 때문에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간의 애정을 상징한다. 두 몸이 하나가 되는 형상에서 당연히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상림에 갔을 때 연리목 두 그루를 보았다. 그 중의 하나가 '사랑나무'라고 이름이 붙은 이 나무다. 특히 이 연리목은 수종이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 아랫 부분이 결합되어 있어 특이하다. 보통의 연리목은 같은 수종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안내문에 보면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더욱 두터워지고, 남녀간의 애정이 이루어지며 소원성취한다고 되어..

천년의나무 2007.08.28

함양 상림

고향이함양인 동료로부터 상림 자랑을 들은 차에 주말을 기다려 애마의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상림은 천년이 넘은 인공숲이라는 것,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숲이라는유혹을 견디지 못한 것이다. 상림(上林)은 함양읍내 위천(渭川) 강가에 있는 숲으로 신라 말기인 진성여왕 때(재위 887-897)에 당시 태수였던 최치원 선생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만들었다고 한다.무려 1100년이 넘는 인공숲이다. 수많은 나무들이 죽고나고를 반복하며 지금껏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경이롭기만 하다. 100m 안팎의 폭으로 길게 조성된 상림의 면적은 현재 약 6만 평이고, 100여 종이나 되는 2만여 그루의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다. 주된 수종은 낙엽활엽수인 참나무와 서어나무 종류라고한다. 상림의 특징은 인..

천년의나무 2007.08.27

보문사 은행나무

석모도 보문사에는 강화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은행나무가 있다. 안내문에는 이 나무의 관리자는 삼산면장이고, 수령은 400년으로 적혀 있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이기 때문에 별로 색다른 느낌은 없지만 연륜에 비해서 나무가 왠지 초라하게 보인다. 초록색 은행잎으로 덮여있어야 할 나무가 잎도 부족하고 왠지 내복만 입고 있는사람처럼 썰렁하고 민망하다. 가까이 가서 보니 언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가지치기가 너무 심하게 되어 있다. 한여름인데 잎도 잘 나지 못하는 걸 보면 나무의 생육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닌가 싶다. 왜 보호수로 지정되기까지 한 나무를 이렇게 흉하게 만들었을까? 내 추측으로는 아마 이 나무가 뒤쪽의 절 건물을 가리기 때문에그랬지 않았나 싶다. 사실이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천년의나무 2007.08.20

소수서원 솔숲

소수서원이 고향집에서 가까이 있어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들렀지만 주변 솔숲은 최근에 들어서야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하기사 서원 자체에 대해서도 그동안은 별로관심이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내 사는 땅에 대해서는 의외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친구들이 부석사를 찬탄할 때 거기의 무엇이 그렇게 대단한지 의아스럽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한국인에게 소나무의 의미는 각별하다. 예로부터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나무로서 선비정신을 대표하는 나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소나무를 흔히 심었다. 소나무는 선비들이 곁에 두고 아꼈던 나무였다. 소수서원 둘레에 소나무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수서원 둘레의 솔숲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지금도 곧게 뻗은 소나무 줄기에서 ..

천년의나무 2007.08.15

횡성휴게소 산사나무

영동고속도로에 있는 횡성휴게소 광장에 산사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나무지만 안내문에는 수령이 약 150년으로 적혀 있다. 줄기를 보면 그 정도 나이가 충분히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산사나무 자체가 그렇게 크게 자라는 나무는 아닌 것 같다. 나무 둘레에는 둥글게 의자가놓여 있어 여행객들이 나무 아래서 잠시 쉴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 마음이 절로 흐뭇해진다. 휴게소를 만들 때 나무를 베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나무도 살리고 또 그 나무 그늘 아래에쉬어갈 쉼터를 만든 마음씀이 고맙기 때문이다. 인공적인 그늘막보다 훨씬 더 운치가 있지 않은가. 산사(山査)나무는 주로 북쪽 지방에서 자라는 내한성이 강한 나무다. 우리 말로는 아가위나무라고도 하는데, 북한에서는 찔광나..

천년의나무 2007.07.23

궁정동 회화나무

궁궐이나 그 주변에서는 오래된 회화나무를 자주 볼 수 있다. 회화(懷花)나무를 중국에서는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부른다는데 주나라 때부터 궁내에 심었다고 한다. 나무 자체가 단정하고 품위가 있으니사대부들이 좋아했을 것은 당연하다. 이 회화나무는 서울시 보호수로 청와대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예전에 안가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무궁화공원으로 변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다. 아마 이 회화나무는 안가의 담장 안에서 그때의 비극적 장면을 생생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작은 안내문에는 수령이 3백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나무 가까이에는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옆이 청와대라 경비원들이 일반인의 왕래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찍기 위해 조망이 좋은 길 건너편에가..

천년의나무 2007.07.13

헤이리 느티나무

경기도 파주에 있는 헤이리 문화예술마을은 10년 전부터 조성되고 있는 문화예술인들의 마을이다. 15만 평의 공간에집, 작업실, 갤러리, 카페 등으로 사용되는 예술적인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다. 생태마을을 지향한다는데 건물들은 페인트나 타일을 바르지 않고 담장도 없는 자연과 소통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서울에서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그런데 이 예술인 마을이 나에게는 너무 상업적 냄새가 나서별로 좋은 인상을 갖지 못했다. 현대의 트랜드가 돈과 문화라지만 여기서 순수한 예술의 향기를 맡기는 어려웠다.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하는 이런 문화적 장치도 필요하다는 생각이지만 예술이 지나치게 돈과 유희 쪽으로 기울어지는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이곳은 야경이 멋있다는데 환경생태마을이라면 밤에..

천년의나무 2007.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