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68]

샌. 2009. 4. 25. 09:17

지극한 도의 경지는 깊고 멀어서 모양 지을 수 없고

지극한 도의 극치는 아득하고 고요하여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다.

오직 정신을 안으로 간직하여 고요히 있으면

몸이 스스로 바르게 된다.

반드시 고요하고 맑게 하여 그대의 몸을 괴롭히지 말고

정신을 어지럽히지 말아야 잘 살 수 있다.

눈으로 보는 것이 없고,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 없게 하여

네 정신이 네 몸을 지키면 잘 살 것이다.

네 안을 삼가고 네 밖을 막아라!

 

至道之精 窈窈冥冥

至道之極 昏昏默默

無視無聽

抱神而靜

形將自靜

必靜必淸 無勞女形

無搖女精 乃可以長生

目無所見 耳無所聞

心無所知

女神將守形 形乃長生

愼女內 閉女外

 

- 在宥 4

 

장자에서 이 부분은 도교(道敎)의 냄새가 풍긴다. 장생(長生)이라는 말도 나오고, 유심적인 수양 방법을 설명하는 내용도 그렇다.외부와 철저히 단절되고난 후에야 내적 수련을 통해 도와 하나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황제가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 천하를 다스리는 지혜를 듣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사물의 잔해라며 말해 주지 않는다. 황제는 천하를 버리고 따로 집을 지어 띠풀을 깔고 세 달 동안 한가로이 지내다가 다시 선생을 찾아갔다. 그제야 선생은 일어나 앉으며 도에 대해 말해 준다.

 

황제가 광성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도와 하나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 포기와 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황제는 천하를 버린 뒤에야 도에 대해 들을 수 있엇다.하느님이나 부처님을 섬긴다는 것은 우리의 삶과 의식을 지배하는 온갖 욕망과 집착들을 씻어내고 하느님이나 부처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종교가 세속적인 탐욕과 이기심을 이루려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그런데 이런 자명한 원리가 현실에서는 거꾸로 작동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믿음과 욕망의 악순환에 빠져있으면서도 축복이라 여긴다.

 

눈으로 보는 것이 없고, 귀로 듣는 것이 없고, 마음으로 아는 것이 없게 하는, 철저하게 자기를 포기하는 수양의 모습은 무문관에 든 선사들을 연상시킨다. 이런 닮은 점이 있기 때문에 뒤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장자 사상과 융합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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