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95]

샌. 2012. 2. 3. 11:22

월나라 사람들은 삼대에 걸쳐 그들의 군주를 죽였다.

왕자 수는 그것을 근심하다가 도피하여 단혈에 숨어버리니

월나라는 군주가 없게 되었다.

왕자를 찾았지만 알지 못하다가 단혈까지 가게 되었으나

왕자는 굴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풀을 베고 연기를 피워

그를 왕의 수레에 오르게 할 수 있었다.

왕자 수는 군주가 되기를 싫어한 것이 아니라

군주의 환난을 싫어한 것이다.

왕자 수는

나라를 위해 생명을 손상시키지 않을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월나라 사람들은 그를 군주로 삼고자 했던 것이다.

 

越人三世弑其君

王子搜患之 逃乎丹穴

而越國無君

求王子搜不得 從之丹穴

王子搜不肯出

越人薰之以艾

乘以王輿

王子搜非惡爲君也

惡爲君之患也

若王子搜者

可謂不以國傷生矣

此固越人之所欲得爲君也

 

    - 讓王 3

 

춘추시대 때 개자추(介子推)가 있었다. 그는 진(晉)나라의 공자 중이(重耳)을 도와 중이가 문공(文公, 재위 BC 636-628)으로 즉위하게 했지만 아무 벼슬도 받지 못했다. 화가 난 개자추는 면산으로 은둔했고, 뒤늦게 깨달은 문공이 높은 벼슬자리에 등용하려 했지만 세상에 나오기를 거부했다. 문공은 개자추를 나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질렀으나 개자추는 뜻을 굽히지 않다가 결국 타 죽고 말았다. 그래서 개자추가 죽은 그날에 사람들은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찬 음식을 먹으며 그를 기리게 되었다. 이것이 한식(寒食)의 유래다.

 

여기 <장자>에 나오는 왕자 수(搜)의 고사와 닮은 데가 많다. 개자추는 권력에 대한 욕심에서, 수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산으로 숨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도망간다고 세상이 곱게 놓아주지 않는다. 개자추는 불에 타 죽었고,수의 운명 또한 크게 달랐을 것 같지 않다. 그보다는 처음부터 권력이나 명예에 대해 초연함이 옳았다. 그랬다면 이런 화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얻은들 몸을 괴롭히고 자신의 생명을 해치게 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이름 없는 농부의 삶이하늘의 뜻에 더 맞다.

 

요사이 껄끄러운TV 광고 하나가 눈에 띈다. '나폴레옹, 그가 야망을 품지 않았다면 코르시카 섬의 어부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카피와 함께 나폴레옹이 초라한 어부로 하품하는 모습이 나오는 광고다. 어부를 비하한 내용도 문제지만 사람들의 가치관을 오도하는 저질 광고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장자적 관점에서 볼 때 나폴레옹은 차라리 어부로 있었던 게 세상이나 자신을 위해서 더 나은 일이었다. 나폴레옹와 같은 부류의 인간들, 영웅으로 떠받들고 숭앙할 위인들이 차마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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