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93]

샌. 2012. 1. 18. 09:10

순임금은 천하를 선권에게 선양하려 했다.

선권은 말했다.

"나는 우주의 중앙에 서 있다.

겨울에는 모피를 입고 여름에는 갈포를 입으며

봄에는 밭 갈고 씨 뿌리며

몸은 만족스럽게 노동을 하고

가을에는 추수하며

몸은 만족스럽게 휴식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쉬며

천지에 소요하니,

마음과 뜻이 만족하거늘

내 어찌 천하를 다스리겠는가?

슬프다! 그대는 나의 이 행복을 알지 못하다니!"

선권은 천하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속세를 떠나 버렸다.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그가 있는 곳을 아는 이가 없었다.

 

舜以天下讓善卷

善券 曰

余立於宇宙之中

冬日衣毛皮 夏日衣葛치

春耕種

形足以勞動

秋收斂

身足以休息

日出而作 日入而息

逍遙於天地之間

而心意自得

吾何以天下爲哉

悲夫 子之不知余也

遂不受

於是去

而入深山

莫知其處

 

    - 讓王 1

 

요(堯)가 허유(許由)에게 천하를 물려주려 한 것을 비롯해 이런 양왕(讓王)의 사례를 여기서는 여럿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같이 거절한다. 천자의 자리에 앉으라는 것을 도리어 모욕으로 여긴다. 순(舜)과 선권(善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아예 깊은 산속으로 도망갔다. 그가 한 말, "나는 우주의 중앙에 서 있다."[余立於宇宙之中]는 부처님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처럼 한 인간 대자존(大自尊)의 선언이다.

 

장자는 권력에 대해 선천적인 알레르기가 있는 것 같다. 공자가 권력을 적극적으로 취하며 세상을 변혁하려 한 것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이런 출세(出世)와 피세(避世)의 태도가 공자학파와 장자학파의 다른 점이다. 장자에게 임금의 자리란 세속적인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지 몸을 온전히 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또, 개인의 내적 혁명이 따르지 않는다면 아무리 제도가 잘 갖추어져도 헛된 일이다. 권력은 욕망을 낳고, 욕망의 충돌은 결국 삶을 전쟁터로 만들 뿐이다.

 

공자의 출세(出世)와 장자의 피세(避世)는 동양정신의 두 축이다. 이것은 마치 양(陽)와 음(陰)처럼 서로를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이 두 정신이 안에서 조화를 이룰때 참된 선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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