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장자[194]

샌. 2012. 1. 28. 09:36

태왕 단보가 빈에서 살 때

북적이 침입했다.

가죽과 비단을 바쳐 사대했으나 받지 않고

개와 말을 바쳐 사대했으나 받지 않고

주옥을 바쳐 사대했으나 받지 않았다.

북적이 요구하는 것은 땅이었다.

태왕이 말했다.

"남의 형과 같이 살고자 그 동생을 죽이고

남의 부모와 함께 살고자 그 아들을 죽이는 짓은

나로서는 차마 할 수 없다.

그대들은 모두 그냥 머물러 살도록 노력해 보라.

내 백성이 되는 것과 북적의 백성이 되는 것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내가 들은 바로는

기르는 수단 때문에 길러야 할 주체를 해치지 말라고 했다."

태왕이 지팡이를 짚고 빈을 떠나자

백성들이 줄지어 그를 따랐다.

그래서 기산 아래에 새로운 나라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태왕이야말로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太王亶父居빈

狄人功之

事之以皮帛而不受

事之以犬馬而不受

事之以珠玉而不受

狄人之所求者土地也

太王亶父曰

與人之兄居而殺其弟

與人之父居而殺其子

吾不忍也

子皆勉居矣

爲吾臣與爲狄人臣

奚以異

且吾聞之

不以所用養害所養

因杖策而去之

民相連而從之

遂成國於岐山之下

太王亶父可謂能尊生矣

 

    - 讓王 2

 

생명 존중과 인본주의 정신이 잘 나타난 고사다. 태왕단보(太王亶父)는 주(周)나라 문왕의 할아버지다. 그러니까 주가 아직 건국되기 전의 이야기다. 오랑캐가 침입하여 땅을 요구할 때 태왕단보가 걱정한 건 전쟁으로말미암은 백성의 죽음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혼자 길을 떠났는데 도리어 백성이 따라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인간은 목적이지 수단이 아니다. 모든 가치의 초점은 인간과 생명에 있어야 한다. 권력과 나라는 수단일 뿐 백성의 행복이 제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태왕단보는 드문 길을 간 사람 중의 하나다. 세계 역사를 인본의 정신을 회복해 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중세의 르네상스는 그런 도상의 거대한 변환이었다.

 

위대한 종교나 사상의 바탕에 깔린 건 인본주의 정신이다. 신을 믿는 종교도 마찬가지다. 신약에 나오는 예수의 안식일 밀이삭 사건이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나는 신앙의 본질이 남을 내 몸처럼 여기는 마음, 그리고 거기서 얻어지는 기쁨과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이 고사를 인용하며 장자는 이익 앞에서 생명을 가볍게 잊어버리는 세태를 걱정하고 있다. '이익 앞에서는 생명을 가볍게 잊어버리니 어찌 미혹됨이 아니겠느냐?'[見利輕亡其身 豈不惑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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