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2011년을 보내며

샌. 2011. 12. 31. 21:51

2011년은 나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만하다. 연말이 되면 흔히 다사다난이라는 말을 쓰는데 바로 올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큰일들이 한 해에 집중된 인생 대변화의 때였다. 묘하게도 나이 끝이 아홉이 되는 해에는 쓰나미가 몰려온다. 10년의 주기 중에서도 올해의 진폭이 가장 컸다.

올초에 35년 직장 생활에서 떠났다. 정년까지는 4년 더 남았지만 명퇴를 택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잘한 선택이었다. 고백하건대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직업은 나에게 항상 무거운 짐이었다. 그 짐을 벗으니 날아갈 듯 가볍다. 퇴직 후 만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내 표정이 밝아졌다고 말한다. 퇴직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기본 생활은 달라진 게 없다. 일에 충실하지 않은 게 도리어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생존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점이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지금은 늦게 찾아온 팔자 좋은 삶을 만끽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딸 둘을 한 해에 모두 시집 보냈다. 연초 상견례부터 12월 결혼식까지 올해는 딸로 시작하여 딸로 끝났다.둘을 한꺼번에 여의느라 아내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서로 연년생 자매여서 쌍둥이처럼 컸는데 결혼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둘 다 사내연애로 짝을 구했고, 결혼 경비도 직장 다니며 스스로 마련한 것으로 넉넉했다. 알맞은 적령기에 모두 결혼을 하게 되어 역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제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 오손도손 예쁘게 사는 모습이 여간 대견한 게 아니다. 그것만이 둘을 떠나보낸 부모의 빈 가슴을 치유해주는 묘약이다. 둘의 결혼은 2011년이 우리 집에 준 최고의 선물이다.

4월에는 서울을 떠나 광주(廣州)로 이사했다. 43년의 긴 서울살이에서 벗어났다. 한때 여주에서 탈서울의 실험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서울에 직장이 있었던 반쪽 생활이었다. 결국은 여주 생활의 여파가 이곳 광주로 이어졌다. 이곳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깨끗하고 시골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광주 시내도 인간적인 규모의 소도시로 크기가 적당하다. 어수선하고 불편한 점도 있지만, 대도시에는 없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좋다. 다만, 윗집에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젊은 부부가 살아 층간 소음이 시끄럽다.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을 했지만 어떤 날은 잠을 설친다. 한번 신경 쓰이기 시작하면 자꾸 예민해지는 게 문제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는가 보다.

광주에서 오래 살 생각은 없다. 언젠가는 산골 오두막으로 들어가고 싶다. 젊었을 때부터 뇌리를 떠나지 않은 게 힌두교의 임서기(林棲期)였다. 힌두교인은 남자 나이 50이 되면 가족 부양에서 떠나 숲으로 들어가 수도의 삶을 산다고 한다. 옛날 50은 지금으로 치면 60이나 그 이상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소로우 흉내를 내는 은둔 생활을 해보는 게 내 마지막 꿈이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질지는 확신할 수 없다. 안 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내년에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농사일을 돕는 날이 많을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뭔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아내가 공부를 시작했다. 첫째가 심리학을 전공했는데 아내가 늘그막에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옆에서 보니 아내는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공부는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것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을 잊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무엇엔가 몰두할 수 있다는 건 바람직하다. 그래서 올 한 해 부부가 함께 여행 한 번 가지 못했다. 이제 큰일들을 치렀으니 내년에는 여유가 생길 것 같다. 내년에는 하고 싶은 게 많다.

2년째 끌고 있는 소송이 끝나는가 싶더니 상대편에서 항소해 내년에도 법원을 들락거리게 생겼다. 거머리처럼 끈질기게 달라붙는 관료들에 질린다. 그러나 사필귀정이 아니던가, 반드시 좋은 결과가 찾아오리라 믿는다.

올해는 그동안 소원했던 인간관계를 많이 복원시켰다. 관수회, 물우회, 삼삼회, 트레커, 경떠회, 면목회 등의 모임이 있는데, 만나고, 얘기 나누고,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게 즐겁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내 삶의 활력소 중 하나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가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한 친구는 나에게 올해는 운수대통의 해라고 말하며 부러워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2011년은 다사다난(多事多難)이기보다 다사다복(多事多福)의 해였다. 또한, 인생 후반기가 시작되는 전환기였다. 내년부터는 다시 일정한 흐름의 안정기에 접어들 것이다. 안으로 밖으로 기대를 낮추고, 좀더 단순하고 가벼워져야겠다.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살자. 고맙고 감사하다. 안녕,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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