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샌. 2011. 12. 22. 08:19

퇴직하고 나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십중팔구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무슨 일 하며 지내?" 어떤 사람은 맨 첫 마디에 묻기도 하는데, 대개는 이런 질문이 나오는데 늦어도 30초가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이 있기도 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는 이렇게 물어 나를 놀라게 했다. "요사이는 무슨 책을 읽고 있어?"

사람들은 일을 거의 자신과 동일시한다. 일이 없는 삶을 상상하지 못한다. 심지어는 하는 일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한다. 문제는 일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저 일 속에 파묻혀 산다. 그런 사람에게 일은 진정한 삶으로부터의 도피밖에 되지 않는다. 퇴직 후의 취미생활도 마치 일하듯 전투적으로 한다. 그들은 고독한 시간이 두려운 것이다. 내면의 불안이 더욱 일로 내모는 건 아닐까.

일을 신성시하는 건 현대 사회의 신화 중 하나다. 옛날에는 일을 경멸했다. 일과 노동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저급한 삶이었다. 분별 있는 사람들은 일이 인간 본연의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엔가 일과 노동이 고귀한 지위를 누리기 시작했다. 노동 예찬의 찬가가 울려 퍼진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에 일은 신의 명령으로 도덕적인 권위를 인정받았고, 산업혁명을 거치며 말 잘 듣는 노동자를 양성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일을 경시하는 태도도 물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볼 때 더 큰 문제는 일중독이다. 밥벌이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지만 어디까지나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일에 목매달 때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의 노예 노릇을 자청해서 하는 셈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개인의 일중독을 마다할 리 없다. 에덴동산에서 신에 거역한 징벌로 인간은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숙명을 짊어졌다.파라다이스란 일에서 해방된 자리다.

사람들의 일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 인류 역사의 오랜 기간에 일은 영예로운 것이 아니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에 대한 집착에서만 벗어나도 사람은 훨씬 더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일을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또는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한 데서 오는 게 아닐까. 현실적으로 체제를 바꾸기 어렵다면 우선 내 마음이 변해야 한다.

나 역시 오랜 기간 원치 않는 일에 붙잡혀 직장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좀 더 현명했더라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에 덜 의미를 두었다면 마음고생도 덜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이 어쩔 수 없는 의무라면 되도록 일을 즐기는 게 최선이다. 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일 위에 올라서서 피식 웃어줄 수 있어야 한다. 며칠 전에 아파트에서 청소하는 분을 만났다. 바닥에는 쓰레기 봉지가 터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어느~ 차가~ 또~ 밟고~ 갔구나~" 하고 노래를 부르며 싱글벙글 치우고 있었다. 인생의 선생님은 먼 곳에, 높은 데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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