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그냥 살면 됩니다

샌. 2011. 12. 6. 08:11

법륜 스님의 '희망세상만들기' 100회 연속 강연이 오늘 저녁 강동구민회관을 끝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10월 17일부터 전국을 돌며 거의 매일 두 개씩의 강연이 이어진 강행군이었다.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었는데 결국은 함께 하질 못했다.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은 것에 만족한다.

스님은 사람들의 고민 해결사면서 뛰어난 카운슬러다. 강연 뒤에 사람들의 고민에 대해 답을 해주는 '즉문즉설(卽問卽說)'이 재미있다. 명쾌하면서 핵심을 찌르는 대답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심금에 파고든다. 마음의 괴로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불교적 관점에서 설명해 주신다. 어느 강연에서 열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한 사람이 이런 질문을 했다.

질문:오빠는 제가 14살 되던 때에 자살을 했습니다. 그 후 부모님이 그래도 빨리 마음을 추스르셔서 저는 지금까지 잘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해보려고 할 때마다 죽음이라는 생각이 늘 곁에 떠나질 않습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열심히 해서 뭐하나.. 이걸 해서 뭐하지.. 이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그래서 무엇을 열심히 하게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후 스님과 질문자의 대화는 이렇게 이어졌다.

스님: 토끼는 열정적으로 사나요? 그냥 사나요?

질문: 그냥 삽니다.

스님: 노루는 열망을 갖고 사나요? 그냥 사나요?

질문: 그냥 삽니다.

스님: 사람도 그냥 살면 됩니다.

질문: 그래도 가치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렇게 그냥 시간을보내고 있는 건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님: 인생이 가치 있는 줄 알아요? 고상한 척하지 말아요. 그냥 인생일 뿐입니다. 그냥 살면 됩니다. 그리고 죽을 때 되면 죽는 거예요. 열심히 살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토끼처럼 살아요. 열심히 살지 못한다고 자신을 탓하면 안 됩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면 됩니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죽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천장에 끈 달아 목을 매고 자살합니다. 그들을 보면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그냥 있으면 언젠가 죽을 건데, 왜 그렇게 끈 매는 수고까지 하며 죽는지 모르겠어요. 그 노력으로 다른 걸 하면 잘 할 겁니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면 사람들은 또 살고 싶어 난리를 핍니다. 사람의 인생에서 평생의 병원비보다 죽기 전 1년간의 병원비가 더 많이 나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죽을 때가 됐는데, 억지로 그 생명을 연장하려고 그렇게 비용을 지불하는 겁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살아있을 때 삶을 만끽하며 살면 되고, 죽을 때가 되면 죽으면 그만입니다. 어차피 죽을 건데 해서 뭣해, 그런 생각이 든다고 했죠? 맞아요. 어차피 죽어요. 그런데 거꾸로 어차피 죽을 건데 도전하지 못할 게 뭐가 있겠어요. 뭐가 무섭습니까. 그냥 다 해보는 겁니다. 학생은 친오빠의 영향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자주 납니다. 가까운 사람이 자살을 한 경우 그 사람도 죽음을 쉽게 생각하고 자살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러니까 이제 그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뭔가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 열심히 해야겠다, 라고 자신을 괴롭히지 마세요. 인생이 별게 없어요. 그냥 살면 되는 겁니다. 순간순간을 사세요.

또 어느 강연에서는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고백도 있었다. 스님은 어떻게 대답했을까?

질문: 저는 한 달 전까지 고등학교 교사였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고, 지금은 약물치료를 받고 학교는 그만 두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에 저희 가족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제게 늘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저를 성폭행하였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가출하셨고, 오빠도 집을 나가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아버지만 미워했는데 작년부터는 어머니까지도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은 매일 싸움이 있었는데 아빠 엄마가 싸웠던 이유가 다 알콜 중독인 아버지 때문이었기 때문에 항상 엄마는 불쌍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사회에 나가서교사가 되어 돈을 벌게 되면서 엄마와 오빠를 너무너무 싫은 아빠로부터 독립시켰습니다. 그 후 아버지는 7년간 혼자 계셨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제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괴롭게 만든 게 어머니란 생각이 어머니랑 같이 살면서 조금씩 느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오빠 모든 제에겐 의지가 안 되고 가족 전체가 제 경제력만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서 짐이 너무 무겁고 학교 다니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 두었습니다. 7년 동안 아버지를 홀로 뒀다가 작년에 아버지를 뵈었는데 증오라는 감정과 불쌍하다는 감정이 동시에 올라오더라구요.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스님: 네, 아주 어려운 얘기를 꺼내주셨습니다.(청중 박수!) 어떤 사람이 나를 납치해서 매춘굴에 팔아버렸어요. 그곳에서 내가 아무리 탈출을 하려고 해도 탈출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내가 거부하니까 나에게 강제로 마약을 주사했어요. 나는 마약에 취해 손님을 받게 되고 또 정신이 들어 탈출하려고 하면 또 마약을 주사해서 또 손님을 받게 되고 이렇게 1년 2년 3년간 거기서 고통을 겪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경찰이 와서 결국 나는 풀려났어요. 나는 이제 마약을 안 맞아도 돼요. 그런데 이제는 내 스스로 마약을 맞습니다. 마약을 맞으면 처벌을 한다고 해도 맞습니다. 가족이 말리고 경찰이 말리는 데도 나는 숨어서 스스로 마약을 찾습니다. 그럴 때 너 왜 마약을 하느냐 물었을 때 이것은 내 책임이지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강제로 주사해서 마약 중독이 되었으니 그들 책임이다, 이렇게 하시겠어요? 아니면 원인이 어디서 어떻게 생겼든 지금 마약을 하는 이 습관은 나의 습관이고 내가 이것을 멈춰야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 어느 길을 선택하시겠어요?

질문: 좀 더 나은 희망이라는 것을 갖고 싶기 때문에... 스스로가 마약을 맞고 있다면 힘들더라도 끊고 싶습니다.

스님: 마약을 끊는 책임이 나를 납치해서 마약을 주사한 그 사람에게 있어요? 그 사람이 직접 와서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어야 마약을 끊을 거예요? 아니면 그 인간들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약을 끊을 거예요?

질문: 그렇게 하지 않아도 마약을 끊어야겠죠.

스님: 내 고통의 시작은 아버지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하더라도 지금 이 고통은 누구꺼요?

질문: 제 꺼요.

스님: 그럼 아버지가 개과천선해서 나한테 잘못했다고 빌어야 내가 이 고통에서 벗어날 거예요? 아버지하고 상관없이 벗어나야겠어요?

질문: 상관없이 벗어나야 되는데 너무 힘이 듭니다.

스님: 마약을 전에는 안 맞겠다고 했는데도 강제로 맞춰서 맞았는데, 지금은 맞지 마라 했는데도 내 스스로 선택해서 맞지 않습니까?

질문: 네.

스님: 그처럼 처음에는 내가 싫다는데도 강제로 괴롭힘을 당했지만 이미 괴로워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누가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데도 이제는 내가 괴로워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정신을 차려야 돼요. 원인이 누구한테 있었건, 아버지로부터 있었건, 어머니로부터 있었건, 오빠로부터 있었건, 길가는 사람에게 있었건, 누구한테 있었건, 그런 건 지금 논하는 게 중요하지 않아요. 기도를 이렇게 해야 돼요. “어머니, 아버지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엄마한테 108배, 아빠한테 108배, 200배 절을 하면서 감사하다는 기도만 하셔야 합니다. 딴 생각은 하지 말고요. 낳아서 갖다 버려도 낳았으니까 내가 살고 있고, 설령 성폭행을 했다 하더라도 그래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것은 누구 때문에 살고 있어요? 엄마 아버지 때문에 살고 있죠?

질문: 네.

스님: 감사한다는 생각만 해야 돼요. 그러면 치유가 됩니다. 자기 정신 질환도 치유가 되고요. 아버지가 나를 성추행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상에 집착하는 겁니다. 그 남자가 내 손을 잡을 때는 아버지예요, 남자예요?

질문: 남자.

스님: 그냥 남자예요. 상을 지었으니까 나에게 정신적 고통이 큰 겁니다. 어떤 사람이 나를 껴안았어요.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예요. 그러면 사랑을 받았다 이렇게 말하죠?

질문: 네.

스님: 만약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껴안았다면 뭐라고 해요? 성추행을 당했다 이렇게 되죠?

질문: 네.

스님: 그러면 성추행을 당하기도 하고 사랑을 받기고 하는 것은 그가 하는 거예요? 내가 하는 거예요?

질문: 내가 하는 거요.

스님: 이 도리를 지금 깨쳐버리면 어릴 때 상처를 단박에 벗어날 수 있고, 이 도리를 못 깨치면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해요.

질문: 네.

스님: 알아들었어요?

질문: 네.

스님: 더 묻고 싶은 것 있어요?

질문: 저는 나이가 35살인데요. 아버지한테 그 일이 있은 후... 결혼을 하고 싶은데 그걸 배우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요?

스님: 배우자한테 말 할 필요가 없어요. 자기한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질문: 남자를 사귈 수가 없어요.(눈물)

스님: 그러면 하루에 108배를 더 절하면서 이러세요. "부처님, 저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저의 몸과 마음은 깨끗하고 청정합니다." 이렇게 절을 하세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어릴 때 그런 꿈을 꾼 거예요. 그냥 꿈이었을 뿐인데, 악몽에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거예요.

질문: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질문자 환하게 웃음)

스님: (청중들의 우렁찬 박수!) 제법이 공(空)하다 이런 말 들어보셨어요? 이 몸도 공(空)해요. 부처님이 와서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껴안아준다고 해서 이 몸이 성스러워집니까? 어떤 남자가 와서 나를 껴안고 성추행을 했다고 해서 이 몸이 더러워집니까? 아니에요. 이 몸은 더럽힐래야 더러워질 수 없고 성스럽게 할래야 성스러워질 수 없습니다. 다만 공(空)할 뿐이에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 ‘아, 내가 사랑을 받았다’는 한 생각이 나를 성스러워지게 하는 것이고, ‘아,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 는 한 생각이 나를 더러움으로 빠트리는 거예요. 내가 진실을 알면 천하 누가 나를 더럽힐 수도 없고 천하 누가 나를 성스럽게 할 수도 없어요. 그러니 아버지를 논하지 말고 내가 악몽 속에서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거예요. ‘아, 진리를 깨닫고 보니 이 몸은 더럽힐래야 더럽혀질 수가 없구나. 이 몸은 성스러워질래야 성스러워 질 수가 없구나.’ 이걸 확연히 깨쳐버리면 오늘로서 끝이 나는 겁니다. 그것을 움켜쥐고 있으면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정신적인 상처를 먼저 치유하고 결혼을 해야 됩니다. 지금 결혼을 논할 때가 아니에요. 결혼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여자는 부정하다고 했죠? 인삼밭에도 오지 마라, 배 탈 때도 오지 마라, 가게 첫 손님으로도 오지 마라 이랬잖습니까?

청중: 네.

스님: 여자는 부정합니까? (아니요) 과거에는 여자가 부정하다는 관념이 있었죠. 지금은 여자가 부정하다는 관념이 없어진 것이지 여자가 없어진 것은 아니잖아요. 옛날에는 양반 상놈이 있었죠. 양반 상놈도 관념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 어리석은 생각들이 지금은 없어진 것입니다. 더럽다는 생각이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이지 아버지가 나를 지금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런 더러움이 없습니다. 본래 내 몸을 더럽힐래야 더럽힐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은 한 생각이 일어나서 그것을 지금까지 움켜쥐고 있었을 뿐이지 탁 내려놔 버리면 바로 해방되는 거예요. 문제는 이렇게 깨달음의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생각을 움켜쥐고 괴로움의 세계로 갈 것인가? 중생이 될 것인가, 부처가 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자기 선택인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렇게 심리치료를 해줘야 되고 또 정치하는 사람은 세상을 좋게 바꿔줘야 되요. 저 같은 사람은 어떤 성폭행을 당했다 하더라도 한 생각 버려서 자기 해탈을 하도록 도와줘야 되고, 세상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야 되고 이 양쪽을 다 가야 되요. 한쪽만 가는 게 아니고요.

질문: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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