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군대와 학교

샌. 2011. 11. 5. 08:36

친구들과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입대하게 되는 악몽을 공통으로 꾼다는 점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이유를 붙여서라도 붙잡아가려는 당국과 도망가려는 나 사이의 갈등이 군대 꿈의 기본 틀이다. 꿈을 깨고 나면 식은땀이 흐르기도 한다. 군대가 체질인 사람이 아닌 이상 대한민국 대부분 남자들에게는 군대 경험이 정신적 트라우마로 남아 있음을 공통적인 꿈 경험이 대변해 준다.

나에게는교직 생활 역시좋지 않은 꿈으로나타난다. 퇴직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학교가 꿈에 나오면 영 기분이 언짢다. 수업하러 들어가는데 교실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꿈이 제일 잦다. 미로 같이 얽힌 학교 건물을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교실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수업 시간이 끝나 버린다. 또, 교안을 준비 안 하고 교실에 들어가 수업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시달리는 꿈도 꾼다. 학교에 관한 꿈도 군대 꿈처럼 악몽이다.

군대와 학교는 닮은 점이 많다. 특히 옛날 군사독재 정권 시절에는 더했다. 군인까지 학교에 상주했으니 학교는 작은 병영이었다. 그런 조직과 규율, 단체 생활에적응하기 어려웠다.겉으로는 착실한 학생이었지만 속은 곪아갔다. 군대와 학교는인간을 체제에 순치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선생 생활 35년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을 다루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특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부터는 입시 위주의 경쟁 체제에 맞추기가 어려웠다. 내면의 소리와 학생들 앞에서 해야 하는 언행의 괴리가 괴롭게 했다. 심하게 얘기하면 거대한 사기판 속에서 나는 한 부속품일 뿐이었다.

그런 모든 상황에서 빠져나온 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 탓을 하는 건 부질 없는 노릇인지 모른다. 교직이 아니었다면 당신은 진작에 잘렸을 것이라는 아내의 말에도 동의한다. 잘났든 못났든 인생의 중심부였던 삶은지나갔고 이제는 무의식에 어둡게 각인된 채 가끔 꿈으로만 나를 찾아올 뿐이다. 바라건대, 이제는 군대와 학교가 없어지는 화려한 꿈 한 번 꿔 봤으면 좋겠다. 군대와 학교가 없는 세상이 가능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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