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미친 놈들

샌. 2011. 10. 30. 04:25

지난 26일에 도올 김용옥 선생이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했다는 소식을 늦게야 들었다. 선생은 지금 EBS에서 '중용, 인간의 맛'이란 강의를 하고 있는데, 예정된 내용에서 반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연 강의 중단 통보를 받은 것이다. 현장에서 도올은이 정권에 대해 직설적으로 "미친 놈들!"이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중용, 인간의 맛'은 내가 지금 가장 열심히 보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한신대학생들을 상대로 한 정규 과목 강의인데 EBS에서 일반인들을 위해 중계해 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9월부터 시작해서 총 36회 분이 방송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도올만큼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도드물 것이다. 그분의 고전 해석에서부터 인품에까지 도올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말에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도올이 이 시대에 전하는 메시지는 귀 담아 들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중용, 인간의 맛'도 상당히 내용이 좋은데, 이만큼 흥미진진하면서쉽게 풀이해 주는중용 강의를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중들에게 인문학을 친근하게 소개하고, 꿈과 이상의 세계로 젊은이의 가슴을 뛰게 해 준다는 것만으로도 그분의 존재 의의는 충분하다.

그런데 강의 내용 중에서 무엇을 트집 잡았는지 갑자기 방송사에서 하차를 통보했다고 한다. 도올의 말대로 방송사 자체의 판단이 아니라 정권의 압력이 있었음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다. 도대체 내가 어리둥절한 것은 무엇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모르겠다는 점이다. EBS에서는 종교 비하와 비속어 사용 등을 문제 삼는 모양인데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종교나 정치에 관한 그 정도의 비판이나 언어 사용도 하지 못한다면 이 나라는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 한심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정 껄끄러운 내용이 있으면 편집해서 자르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본 중에서도 이미 여러 군데 편집한 흔적이 눈에 띌 정도로 있었다. 중용 강의를 통째로 없앤다는 건 시청자를 우롱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태다.

이 정권을 불통정권이라 부르는 이유를 알겠다. 비판하는 목소리를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제 목소리를 내는 연예인이나 방송인을 여럿 퇴출할 때도 화가 났지만 이번 경우는 내가 아끼는 프로그램이어서 더욱 화가 난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는 어리석은 짓거리는 이제 그만 두시길 부탁한다. 정말 '미친 놈들'이 아니고서야 이런 옹졸한 발상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필귀정인지 이날 실시된 보궐선거에서는 박원순 변호사가 깨인 젊은층의 압도적 지지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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