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봄 / 조태일

샌. 2005. 5. 11. 13:18

봄이라는 계절은 하늘과

땅 사이에서 가장 진한

향기가 나는 방대한

한 권의

 

이 책을 펼쳐보지 않으시렵니까?

잔설이 애처로이 새하얗게 반짝이고

냉잇국 향내 스며도는 그런 이야기들이

송사리떼 희살대는

실개울처럼 흐르기도 한다네요

 

아니

봄풀, 봄꽃들이 다투어 태어나

한바탕 어울어지는 봄빛 속을

봄바람이 불어대니

처녀애들 치맛자락 들치듯

한 장 한 장 책장이 저절로 넘겨집니다

그럴 때마다 봄향기 풀풀거리네요

 

봄 내내 집을 비우고 봄나들이 해도

집에서 쫓겨나지도 않을걸요

평생에 이런 봄 백 번쯤 온답디까?

 

그러니 봄이라는 책 속에 묻히지 않으시렵니까?

그런 봄기운에

그냥 몸을 맡기지 않으시렵니까?

그냥 봄잠에 취해보지 않으시렵니까?

눈을 감아도

그냥 보이는, 봄이란 책 속에 취하지 않으시렵니까?

 

- 봄 / 조태일

 

어제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책상 위의 일거리들은 뒤로 밀쳐놓고 산에 올랐다. 그리고아차산에서 용마산과 망우리로 이어지는 내 단골 코스를 혼자 걸었다.

말 그대로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5월의 하늘과 땅이다.

미풍은 향기를 띄고 있고, 연초록 나무 잎사귀를 흔들며 지나간다. 그 사이를 봄햇살이 반짝인다. 대기는 생기로 가득하다.작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가 그렇게 소중해 보일 수가 없다.

여름과 가을과 겨울도 나름대로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순수함과 맑음,생동하는 기운은 지금 이맘 때만이 맛볼 수 있는 특권이다.

 

어린애의 깨끗하고 명랑한 웃음같은 5월의 산하가주위에 펼쳐져 있다.

눈을 감아도 그냥 보이는, 은혜로운 봄의 향연에 초대받았으니 그 향기에 마음껏 취하자.

 

'평생에 이런 봄 백 번쯤 온답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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