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상실

샌. 2005. 3. 10. 15:23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만나 가르침을 받기 위해 한 구도자가 히말라야 설산을 향해 갑니다. 그는 깨달음에 관한 결정적인 한 마디를 듣고 싶었던 게지요. 걷고 또 걷고, 오르고 또 오르기를 반복하며 그는 하나씩 무거운 짐을 버려가며 산꼭대기를 향해 나아갑니다. 가진 것을 거의 다 버리고, 수십 만 번 가쁜 숨을 몰아쉰 다음 마침내 세속적 집착도 거의 다 놓아버렸습니다. 최후의 능선을 오른 그는 동굴에 다다라 안쪽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엔 붓다처럼 보이는 도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구도자는 기쁨에 넘쳐 물었지요. “이 세상 최고의 진리를 알려주십시오. 가장 중요한 진리는 무엇입니까?

생애 최대의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구도자는 이제 막 깨달음의 문턱에 들어서려는 찰나에 있습니다. 앞으로 자신의 전부를 바쳐 성찰해야 할 본질적인 한 가지를 얻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도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그것은 고(苦)이니라. 산다는 것은 고통이다. 삶은 위태로우며 어려운 것이다.”

그 말을 들은 구도자는 너무나 낙담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외쳤다고 하네요. “여기 누구 없어요? 내 질문에 제대로 답해줄 다른 사람 없냐구요!”


라마 수리야 다스가 쓴 ‘상실’이라는 책에 나오는 예화입니다. 이 불쌍한 구도자는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실상이 고(苦)가 아닐까요? 그것은 어디를 가도, 아무리 외쳐 봐도 결국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가끔씩은 삶이 또한 환상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주변의 실체들이 무너져 내리고 그것들과 관계를 맺는 내 삶이 허깨비 같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부정하고 외면하고 싶은 것, 또는 가끔씩 떠오르는 요상한 생각들이 도리어 삶의 진실된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또 다른 진실 중 하나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걸 무상(無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가 만나는 어느 것 하나 영속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우리가 가진 것이 언젠가는 우리를 떠나갑니다.

고통의 원인은 대부분이 이런 상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재물을 잃고, 직업을 잃고, 건강을 잃고, 명예를 잃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가고, 어느 순간 아무 예고도 없이 우리를 찾아와서는 이런 것들을 앗아갑니다. 왜 하필 나를 찾아왔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도리어 착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불행이 닥치기도 합니다. 신(神)의 뜻이라고, 아니면 과거의 업(業) 때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상실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위로의 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어떤 고통은 분명히 자신의 책임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결과론이지만 한 순간의 선택의 잘못이 엄청난 결과를 야기하기도 합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수 년 전에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집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거주의 개념으로 생각하며 주택에 매이기보다는 좀더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 거지요. 그런데 그 지역이 개발이 된다 하면서 가격이 무려 3억 가까이 올랐습니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가만히 있었다면 이 돈은 그의 재산이 되었겠지요. 지금은 집을 마련하려 해도 주변 집값이 많이 올라 이제 집을 장만하려면 그는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는 우리 주위에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면에서 돈을 잃는 것은 행운일지 모릅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이런 경우조차 그와 가족이 겪는 아픔을 옆에서 바라보니 고통의 정도는 객관적 상황과는 별로 관계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겪는 고통은 사물에 대한 집착이나 소유욕과 연관되어 있음을 봅니다. 인간의 욕망 중에 가장 폐해를 많이 끼치는 것이 소유욕이 아닐까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 위에 올라가고 더 많이 얻겠다는 과욕이 우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이기적 현실주의자가 되나 봅니다. 다른 사람이나 생명을 생각하지 않고 나만, 또는 내 가족만 잘 살겠다는 욕심이 다른 생명을 아프게 하고,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그것은 부메랑이 되어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와 본인의 마음도 황폐화 시킵니다.

자연을 더 많이 닮은 동물들은 그렇지 않지요. 오직 그 날에 필요한 것만 구하고 모을 뿐입니다. 인간만이 천 년 만 년 살 듯 미래에 대한 몫까지 챙기려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몫을 빼앗아 오는 것이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으니 개인을 비난할 수도 없게 생겼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이젠 빼앗기지 않으려 더 전전긍긍합니다. 사실 지키는 것이 얻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지요. 하여튼 인간은 참 복잡한 동물입니다.


집착이나 욕심이 클수록 상실에 따른 괴로움의 대가도 큽니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실을 삶의 본질 중 하나로 받아들일 때 스스로를 들볶는 괴로움의 그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고통과 괴로움은 내가 가장 집착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 줍니다. 그래서 고통과 괴로움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고통을 통해서 나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게 되고 자신과 우주를 좀더 평화롭게 대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기회도 될 것입니다.

좀 신비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루돌프 슈타이너는 ‘카르마의 현현’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산책을 나갔다가 벽 꼭대기에서 벽돌이 떨어져 다쳤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리고 그 벽돌을 던진 것이 그의 더 높은 자아였다고 상상해 보세요.” 즉 우리의 더 높은 자아는 카르마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더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분명해질 수도 있습니다.


상실의 아픔에 대처하는 가장 적절한 무기는 세상 만물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이라는 삶의 진리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이지요. 이 세상 모든 것은 변합니다. 심장이 한 번 뛰는 동안에도 모든 것이 변해 갑니다. 모든 숨, 모든 순간, 모든 물체, 모든 동물, 모든 식물, 모든 인간은 한정된 시공간에 잠시 동안만 머물렀다 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삶의 어려운 시절을 살아갈 때 이런 만물의 일시성과 덧없음을 상기하면 위안이 됩니다. 이것은 쾌락을 통해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본 면목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잠깐 동안의 마취제가 아니라 지속적인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결국은 마음으로 귀결됩니다. 상실이 문제가 아니라 상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인 것이지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라 일어난 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아픔과 상실은 약이 될 수 있습니다. 상실과 아픔은 자신을 성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기회도 됩니다.

상실로 인해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물론 어떤 사람에게는 파멸을 뜻하기도 하지만요. 그러나 상실로 인해 우리는 변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상실은 변화와 성장과 거듭남의 가능성을 제공해 줍니다.


라마 수리야 다스가 쓴 ‘상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이런 것들입니다. 그는 이런 말도 인용했습니다. “당신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배우기를 진정으로 원했기에, 우주는 상실이라는 인생대학원에 당신을 등록시켰다.”


마지막으로 상실에 대한 그의 조언은 이렇습니다.


‘첫째, 눈앞의 상실을 충분히 슬퍼할 것.

둘째, 상실의 슬픔을 삭이는 과정에서 무언가 교훈을 얻고 배울 것.

셋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용서한 다음 앞으로 나아갈 것.


어려움이 닥쳤을 때 물러서지 말고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을 직시하면 오히려 풍요함을 얻을 수 있다. 고통과 불행이 밀려올 때는 그저 멈추어서 지금 여기, 이 순간에 단단히 중심을 잡아라. 심호흡을 한 다음 자리에 앉아서 집중하라. 기도하라. 그리고 웃어보아라. 어떻게 해서든 어떤 식으로든 웃어라. 시시하게 대충 웃지 말고 우주와 함께 껄껄 웃어라. 짐을 내려놓고 가벼워져라. 그리고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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