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학교대사전

샌. 2005. 3. 8. 14:29

요즈음 인터넷에서 '학교대사전'이 인기라고 한다.

이번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만들었다는데 지금의 입시 위주의 학교 현실을 시니컬하고 유머러스하게 묘사한 일종의 현실 고발적인 사전이다.

그러나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것이 거기에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교육의 아픈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미소 짓게도 되고, 고개를 끄덕이게도 되고, 또 어떤 것은 너무 심한 표현이다 싶은 것도 있지만 이 사전을 만든 학생들의 재치와 현실 너머를 보는 통찰력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여튼 웃으면서 자신과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사전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교육 문제를 지금의 틀 안에서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의 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없이 이런 암담한 현실이 개선되리라 생각되지 않는다.

그리고 학생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교육의 또 다른 주체인 학부모나 교사의 입장에서 기술된 학교대사전도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 한번 더 웃어보고 싶고, 우리의 교육을 반성해 보는 계기도 되었으면 한다.

학교대사전에 나오는 용어 중에서 눈에 띄는 몇 가지를 골라 보았다.

고삼 - 아플 자유도, 딴청 필 자유도, 게다가 놀 자유는 더욱 없는 다소(?) 불운한 종족을 말한다. 일단 긴 근무시간이 제일 문제이며 두 번째로는 근무시간과 여가시간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놀아도 노는 것이 아니고 일해도 일하는 것이 아니다. 3D업종 중 하나로 청소년들이 가장 기피하는 직업으로 꼽힌다. 반면 일부 어른들은 - 자신들은 고3이 되면 공부를 잘할 거라 믿는 모양이다 - 하고 싶어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직장은 크게 네 곳으로 구분되는데 학교와 학원, 독서실과 집이 그 네 곳이다. 모의고사 결과와 수시에 목숨을 거는 종족이다


교가 - 행사의 끝을 기념하기 위한 노래. 모두 행사가 끝나게 된 것을 기뻐하며 즐거이 부른다. 때문에 애국가 부르는 소리보단 교가 부르는 소리가 더 크다.


교장 - 한 학교 내의 최종 보스. 최종 보스이기 때문에 다른 선생과는 다른 방을 쓰며 그 방의 이름은 '교장실'이다. 교장실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본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피곤해지는 존재.


교훈 - 아무것도 없으면 괜히 멋이 없어 보이니까 일부러 멋들어지게 지어내어 정문에서 잘 보이는 곳에 새겨 넣는 글귀. 실제론 학생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교장이나 일부 몰지각한 교사들은 교훈에 담긴 정신을 이어받으라고 소리를 질러댄다.


단소 - 대나무 재질로 된 피리. 원래는 대나무 재질이어야 하지만 플라스틱 재질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재질이든 간에 모양과 크기가 매우 몽둥이로 적합하여 악기로 쓰지도 않으면서 손에 쥐고 다니는 선생을 볼 수 있다.


단체생활 - 그들과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모두가 맞아야 하는 생활.


담임 - 월급 조금 더 받고 마흔 명의 아이들을 인솔해야 하는 불쌍한 존재. 까닭에 괜히 종례를 길게 끌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을 보이기도.


대학 - 인생의 목표. “행복은 절대 성적순이다(?)"


“떠들 놈들 자” - 수능을 칠 즈음에 떠드는 사람들을 단속해 자습하는 학생들을 보호하려는 선생의 처절한 몸부림.


“마지막으로 짧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 교장들이 가장 애용하는 말로 시원한 그늘 밑에서 땡볕에서 조회를 서는 학생들을 조롱할 때 주로 쓰인다.


만화책 - 학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책의 종류. 선생의 압수신공에 자주 희생된다. 일부 선생들은 악력 자랑을 위해 찢고 마는데 이는 만화책의 매출만 늘려주어 만화 시장을 더 활성화하므로 찢지 말고 자신이 읽어본 뒤 돌려줄 것을 권한다.


명문고등학교 - 평준화 이후 유야무야 된 조금 오래된 학교. 이들 학교는 오래된 역사에서 자랑거리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들의 모습에서 자랑거리를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민방위훈련 - 사이렌, 라디오 방송과 함께 시작되는 (학교에서는) 유명무실한 제도. 일부 교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나 학생들은 그들답지 않게 국가의 정책을 따라야 한다고 투쟁하여 결국 수업을 빼먹게 된다. 정작 수업을 안 하기로 결정이 되면 언제 민방위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느냐는 듯 모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간단히 무시해 버린다.


백일기도 - 수능이 ‘D-100’이 되면 전국적으로 모든 종교단체에서 행하는 대규모 행사.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대학 가자!


보충수업 - 한때 폐지되었던 것이 특기적성교육이란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정부의 사교육견제책으로 다시 합법화되어서 나타남. 대개 지방으로 갈수록 강제성이 심하며 학생에게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교사에게는 1시간 수업당 2~3만 원의 부수입을 챙겨가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간. 단 보충수업비 내는 학부모 허리가 휜다.


분필 - 흔히 교사들은 비유하기를, 교과서와 필기구는 군인의 무기와 같아서 이것들을 챙겨오지 않는 것은 전쟁터에 군인이 총을 들고 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는 왜 직접 분필을 챙기지 않는 것일까? 대령의 무거운 총은 졸병이 대신 챙기고 다닌다, 뭐 이런 것일까?


생활기록부 - 학생들의 온갖 단점들이 장점으로 바뀌어 미사여구로 수식되는 문서를 말한다. 대학에 보여주기 위한 대외용 문서이다.


수업시간 - 본래의 뜻은 '학생들이 실질적으로 쉬는 시간'으로, 자는 시간의 다른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쉽게 잘 수 있도록 교사들이 몸소 수면제의 역할을 하는 등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수행평가 - 학생들의 점수를 높이려는 선생들의 처절한 몸부림. 하지만, 일부 어리석은 선생들은 수행평가에 목숨을 걸고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점수를 깎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한다.


야자(야간자율학습) - 학교 측에서 학생들이 과도한 입시 공부로 인하여 지칠 것을 우려하여 마련하여 주는 자유시간으로 학부모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율학습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러한 취지 덕택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공부할 수 없는 시간이며, 놀기 싫어도 놀아야 하는 시간이다.


우등상 - 학교 측에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상. '위 학생은 성적이 우수하며 평소 품행이 단정하고 타의 귀감이 되므로……' 라는 문구를 뜯어보면, 성적이 우수하면 인격적으로 훌륭한 인간이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인성교육의 본질.


원칙주의자 - 교사든 학생이든 가끔 볼 수 있는 유형의 정신 이상자. 주위 사람들은 이들이 잘 돌아가고 있는 일에 대해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비난하고 멸시한다. 이들은 결국 치료되어 원칙과 현실을 구분할 수 있게 되는데, 정말로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누구일까?


위화감 - 겨울에 교무실이 너무 따뜻할 때 학생들이 느끼는 감정.


인구론 - 교실 내의 쓰레기 수에 대한 이론. 교사들이 줍도록 시키는 쓰레기는 산술급수적으로 늘어나나 학생들이 버리는 쓰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결국은 교실이 쓰레기화 된다는 이론이다.


인문계 고등학교 - 선생들은 언제나 "너희는 대학 가려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온 것 아냐?"라고 묻곤 하나 학교는 정작 대학입시학원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일부 선생들은 학교의 존재 의의를 인성교육에서 찾는다. 바로 이 입시학원과 인성교육의 두 가지 딜레마 아래서 학교는 표류하고 있다.


입학식 - 앞으로 몇 년간 그 학교에서 겪을 재난의 서막.


조회 - 심심한 교장이 오랜만에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절호의 자리. 그와 더불어 운동부들이 상을 받는 자리.


종례 - 담임의 기분에 따라 엿가락처럼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공허한 시간.


“죄송합니다” - 학생이 잘못을 저지르고 선생의 입을 막을 때 사용하는 말. 처음부터 사용하면 그 효과가 엄청나지만 학생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세우느라 선생의 심기를 어느 정도 불편하게 한 다음에 사용한다. 이래서는 효과가 없다. 선생을 맞상대 할 때는 이 말을 충분히 숙지한 뒤에 최적의 말투를 찾아내어 일정 시간 간격을 두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야말로 만사형통이다.


주번 - 수업이 시작될 때마다 맞는 존재. 하지만, 이들은 불굴의 의지로 버텨서 일주일 동안 계속 맞게 되고 칠판은 갈수록 지저분해진다.


- 언제부터인가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가 더 어울릴 정도로 잠만 자게 되는 곳.


촌지 - 학부모가 선생에게 하는 선물. 촌지를 받고 열심히 일하면 다행이다. 그런 경우는 안 받고 일 안 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다.


“학교의 주인” - 교장이 훈화를 할 때 쓰는 말로서, 학생들에게 제발 쓰레기 좀 버리지 말라고(혹은 청소를 열심히 하라고) 호소할 때 쓰는 말이다.


학부모 - 교사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 이 두 세력은 서로 매우 경계하는데 교사가 집에 전화하면 학부모가 긴장하고 학부모가 학교에 전화하면 교사가 긴장한다. 일상시엔 교사가 우위를 점하나 학교에서 사고나 불상사가 일어나 학부모들이 분노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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