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조나단의 고독

샌. 2003. 12. 27. 15:03
조나단 곁을 모든 갈매기들이 떠나갔다.
아니 그 전에 별나게 행동할 때부터 조나단은 이미 외톨이가 되었다.
가족도, 가까웠던 동료들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고독했다.

조나단이 관심을 가진 것은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얼마나 멋지게 비행을 하느냐였다. 어부들이 던지는 썩은 고기 냄새에 길들여진 다른 갈매기들에게 조나단의 행동은 미친 짓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힘으로 하늘을 멋지게 날려고 하는 모험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배가 고팠고 외로웠다. 패배감과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행복을 위해서 평범한 갈매기로 만족하며 살아가려는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내적인 충동이 그를 높은 하늘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자유를 얻는다.
동료들의 몰이해와 비난 가운데 그는 혼자서 비행 기술을 터득하고 결국은 지상의 나라를 초월한 세계로 인도되는 것이다.

`갈매기의 꿈`을 오늘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조나단의 고독을 생각해 본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생각의 차이에 따른 마찰이 생길 수 있다. 대부분은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를 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말이나 설명으로도 서로간에 이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것은 주로 가치관이 다를 때 발생한다. 만약 서로가 바라보는 방향이 정반대라면 대화는 막히고 그 사이에는 두꺼운 벽이 가로놓일 것이다.
이런 경우는 어떤 말로도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 그것이 다수의 가치관과 배치되는 한 개인의 경우일 때 그는 철저한 소외와 고독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아마 조나단의 경우가 이러했을 것이다.

이것은 `군중 속의 고독`과는 또 다른 차원의 고독이다.
인간의 한계에 아파하고 초월 세계를 본능적으로 그리워하는 한 개체의 회피할 수 없는 고독이다.

老子 道德經 20장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我獨泊兮其未兆 如孀兒之未孩 내래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澹兮其若海 요兮若無所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딴 사람 모두 소 잡아 제사 지내는 것처럼 즐거워하고
봄철 망두에 오른 것처럼 기뻐하는데
나 홀로 멍청하여 무슨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 같기만 합니다.
지친 몸이니 돌아갈 곳도 없는 사람과도 같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 여유있어 보이는데
나 홀로 빈털터리 같습니다.
내 마음 바보의 마음인가 흐리멍텅하기만 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 총명한데 나 홀로 아리송하고
세상 사람 모두 똑똑한데 나 홀로 맹맹합니다.
바다처럼 잠잠하고, 쉬지 않는 바람 같습니다.
딴 사람 모두 뚜렷한 목적이 있는데
나 홀로 고집스럽고 촌스럽게 보입니다.
나 홀로 뭇사람과 다른 것은 결국
나 홀로 어머니 먹음을 귀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는 老子 할아범의 인간적인 면모가 물씬 풍긴다.
이 슬픈 독백이 마음을 아프게도 하지만 한 편에서는 따스하게 느껴지고 공감이 된다. 옳은 말씀만 하시는 老子 할아범이 이때는 이웃집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러나 속은 많이 답답하고 상하셨으리라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심정이 조나단의 경우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사상이나 진리의 가르침은 항상 기존의 가치 체계와 충돌을 빚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같기 때문이다.
세상을 진보시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이런 새로운 숨결인데 그것은 늘 저항과 배척을 받게 되어 있는 운명인 것이다. 그저께 성탄절이 지나갔지만 예수의 일생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역사상 어디에도 예외는 없어 보인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가 이제껏 지내온 생활에 회의를 품고 그 의미를 묻기 시작할 때, 조나단의 고독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는 老子의 슬픈 독백에도 공감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실존적 고독의 아픔은 한 생명을 참 생명에의 길로 인도하리라고 믿는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식 혁명  (2) 2004.02.05
희망  (1) 2004.01.13
바보 이반의 나라  (1) 2003.12.19
전혜린의 가을  (0) 2003.11.10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0) 2003.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