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읽고

샌. 2003. 11. 2. 10:02
이번 주말 집에서 쉬면서 본회퍼의 `옥중서간`을 다시 읽어보다.

그의 신학적 사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삶이 나에게는 자극제가 되고 성찰이 된다. 그의 삶 자체가 무언의 메시지이다. 우리가, 특히 신앙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민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독일의 촉망받던 신학자며 목사였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 반나찌 운동에 가담한다. 1943년 봄에그는 체포되고 히틀러 암살 계획에 연루되어 종전을 몇 달 앞두고 처형되었다.

많은 위대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자신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소명에 몸을 던진 사람이었다. 그의 용기와 사랑,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신앙이 편지에 잘 나타나 있다.

종교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르겠지만 분명한 것은종교란 세상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내적인 가치 못지않게 그것은 사회 현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사회의 부정의나 악에 대해서는 침묵하면서기복과 자신만의 천당을 구하는 것은 자기 기만이다. 이 세상 가운데서 실천되지 않는 종교적가르침은 자기 만족에 불과하거나 위선일 뿐이라고 그는 몸으로 말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로서 나는 개인의 영혼 구원의 문제에 집착해 왔다. 사회 상황은 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세상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어떻게든 돌아가는 것, 우리는 각자의 깨달음을 통해서 교회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요사이 자주 느끼고 있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을 외면하면서 나는 절대로 홀로 설 수가 없을 것 같다.
세상은 眞과 善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세상의 흐름은 너무나 도도하고 위력적이다. 그 흐름에 거역하는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여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기 표현은 필요하고 정당하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란 약자들의 목소리에 동감하여 서명을 하고, 가끔씩은 집회에 참석하는 정도이다. 행동은 미약하지만 의식은 깨어있으려 한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환경 파괴이다. 거리낌없이 환경을 훼손하고 개조하려고 하는 이 문명을 보면 절망감을 느낀다. 이건 죽음의 문명이다.이 문명에 대한 저항의 소리에 힘을 보태야 겠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읽다가 다음과 같은구절을 만났다.

`교회는 그것이 타인을 위하여 있을 때만 교회이다.`

지금의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그 질문은 또한 나 개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타인을 위하여존재할 때만 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타인이란 가난한 이웃이고 비틀거리는 세계일 것이다. 그 고통을 외면한 채 기복과 영혼 구원이라는 자기 만족의 세계에안주하는 것은 예수가 가장 싫어했던 위선이 아닌가 한다.

타인을 생각한다는 것은 동시에 자신에 갇힌 좁은 세계를 깨뜨리는 것이다. 그것은 이기에서 이타로의 방향 전환이다.
그리스도인의 이기성에 대해서는전부터많은 생각을 해 왔다.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크리스챤은 이기적이라는 말을 듣는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그것은 사실이다. 유대인의 선민 의식같은 것이 대표적이 될 것이다. 이타를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이 이기적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역사적으로 교회를 보면 타인을 위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냥 타인을 타인으로 존재하게끔 가만 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얼마나 못된 짓을 저질렀는가?
기독교로 무장한 백인 이주민들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한 짓거리를 보면 알 수 있다.
타인을 위한다는 것이 개종만은 아닐 것이다. 또한 물질적 혜택을 주는 것도 아닐 것이다. 기독교적 사랑이란 그들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고 그들의 가난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우산을 같이 쓰는 것이 아니라 비를 같이 맞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회가 타인을 위할 때 우선 교회는 가난해져야 한다.
바티칸도 가난해져야 한다.
가난은 정신적, 물질적인 쪽둘 다를 충족시켜야 한다.
돈으로 권위로 그리고 무엇을 베푼다는 우월 의식으로는 결코 타인과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친지의 결혼식이 강남의 모 성당에서 있었다.
새로 신축한 듯한 화려하고 거대한 건물의 위용에 우선 기가 질려 버렸다.
내가 사이비 신자여서인지는 몰라도 거기서 결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지상에 내려오신 예수님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이미 텅텅 빈 유럽의 대성당, 고작십여명이 앉아서 미사를 드리는서글픈 모습이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반면에드러나지 않게 음지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이 또한 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이런 것들이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세상은 아름답고 희망이 있다.

이제 개인이나 교회가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새로운 물결이 새로운 도전이 되어 우리에게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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