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 노천명

샌. 2003. 9. 21. 16:53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
노천명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고 싶소

초가 지붕에 박넝쿨 올리고

삼밭엔 오이랑 호박을 놓고

들장미로 울타리를 엮어

마당엔 하늘을 욕심껏 들여놓고

밤이면 실컷 별을 안고

부엉이가 우는 밤도 내사 외롭지 않겠오

기차가 지나가 버리는 마을

놋양푼의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삽살개는 달을 짖고

나는 여왕보다 더 행복하겠오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나는 이름없는 여인이 되소 싶소....`
사람마다 바램이 다르겠지만
어느 날 읽은 이 시의 첫 구절이
종종 나의 독백 소리가 되었다.
이 시도 역시 현실 도피적, 자기 만족적경향이 강하지만
세상의 욕심 버리고 자연과 하나되어 살아보고픈 내적 충동은 어찌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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