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름다운 마무리

샌. 2012. 8. 18. 10:54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이 지상에서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최악의 경우도 상상된다. 암에 걸려 고통에 시달린다든지, 치매로 정신줄을 놓아버릴까 봐 겁이 난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다. 가톨릭에서 말하는 '선종(善終)'이라는 말 그대로 아름답게 이 세상을 뜨고 싶다.

 

스코트 니어링이 떠오른다. 그분은 100세가 되자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품위 있는 죽음을 만들었다. 옆에서 도와준 아내의 역할도 컸다. 작년에 봤던 영화 '청원'도 생각난다. 안락사를 다룬 내용인데 전신마비의 고통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약물로 죽음을 맞는다. 죽음의 순간이 친구들이 모여 노래하고 추억하는 즐거운 파티가 되었다.

 

박기호 신부님이 쓴 <산 위의 신부님>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끝 부분에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신부님 개인의 생각이지만 공감되는 바가 많았다. 옮겨 본다.

 

 

아름다운 마무리

 

가톨릭교회에선 죽음을 '선종(善終)'이라 한다. 신심 속에서 아름답게 맞이하는 임종에 '착할 선(善)'을 붙여준 것 같다. 가장 아름답고 인간다운 마무리는 어떤 죽음일까? 자기 죽음의 색깔은 자신의 삶이 만든다. 좋은 삶이 좋은 죽음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세계의 공동체 마을 노인들의 죽음을 전해 들으면서 더욱 확신했다.

 

수술 후 짧지만 고통스런 시간은 영적 탐험과 같은 체험이었다. 생의 건강과 아름다운 마무리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했다. 어떻게 마무리되는 죽음이 가장 행복할까를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죽음을 능동적으로 맞이하는 방법으로 '단식'을 떠올렸다.

 

미국의 스코트 니어링은 100세가 되자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다. 치매가 있었다고 한다. 간디의 후계자인 비노바 베베도 자신이 세운 빠우나르 아쉬람에서 그렇게 마무리했다. 인도의 지성들은 단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전통을 아직도 따른다는 설명을 들은 바 있다. 죽음으로 떠나기에 좋은 시기라는 것을 느낄 때, 이제는 신께로 귀의하겠다는 뜻을 자녀들에게 알려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자녀들은 편안한 침대와 금식에 필요한 우유와 소금을 준비해놓고 명상에 도움이 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친구와 친지들에게 알린다. 소식을 접한 친구들은 여유롭게 방문하여 추억의 대화를 나눈다. 임종을 하면 가족과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 간소하게 장례를 치른다.

 

단식의 결정은 어느 때 하게 될까? 기준은 다양하겠지만 대표적으로 두 가지 경우라고 할 것이다. 첫째는 타인의 손을 빌려야만 먹고 마시고 배설할 수 있는 상태로 더 이상 병원 치료로 호전이 불가능할 때다. 그래서 의사들도 이 시기에는 막연한 기대에 매달리게 하지 않는다.

 

둘째는 자신의 경험이 후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때, 즉 치매가 심해질 때다. 이미 정신에서 실제적 뇌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자식과 친구들이 치매의 경중을 자주 설명해준다고 한다. 이제 내 몸은 떠나가는 것이 가족과 세상에게 도움이 되는 때라는 징표로 삼는다.

 

자발적 단식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의식세계를 명료하게 관조하며 떠나는 건강한 죽음이고 자식들에게는 마지막 정과 사랑을 나누며 헤어지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주어진 모든 생을 자투리 하나 낭비 없이 충만하게 사는 길이 될 것이다. 노구의 노환이 분명한데도 호흡기로 연명하는 것은 타인에게 가야 할 의료의 기회를 빼앗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삶에 대한 미련이야 있겠지만 몸부림치며 가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삶은 구속받지 않을 자유가 있듯이, 방해받지 않는 죽음이라야 자유롭고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평화로운 죽음을 스스로 설계하는 것은 생의 마지막 권리라고 생각한다. 나도 죽음에 친숙해지기 위해서 유서를 마을에 내어놓고 자주 읽어야겠다.

 

 

다음은 신부님의 유서 중 일부다.

 

.... 공동체의 책임자들은 제 노년의 모양에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불치병 진단을 받으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려주기 바랍니다. 치매에 걸렸으면 그 증상 정도를 알려줄 의무가 있습니다. 정신이 돌아온 순간에 유서를 내보이며 말하면 됩니다. 내 손으로 먹고 마시고 내 발로 배설을 다루지 못하는 처지가 된다면 그때는 생의 마지막 시점에 왔음을 서로가 암묵하도록 합시다. 그때에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먹고 싶은 음식이 아니라 단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허기진 단식은 경험상 좋지 않았으니, 우리가 만든 효소액과 좋은 죽염을 곁에 준비해준다면 수시로 입에 넣고 침을 삼키면서 하루 석 잔씩 맛있게 먹으려 지내겠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가족들과 여러 벗들을 종종 만나면서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고 감사하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마을을 떠난 가족들의 얼굴이 보고 싶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찾아와 불러주는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며 지내다가 나의 천사를 맞이한다면 이 얼마나 큰 행복이겠습니까. "그 도성에 들어가려고 자기 두루마기를 깨끗이 빠는 사람은 행복하다."

 

내가 병원에 있는 상태에서 듣고 말할 수 없을 때는 회복 가능성 운운에 귀 기울이고 갈등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는 얼굴이라곤 아무도 없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무진 애를 쓰면서 기약 없이 홀로 누워 마지막 고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하는 것은 최악이고 죄악입니다. 그것은 가장 비인간적이고 추한 죽음입니다. 그것만은 피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간곡히 바랍니다.

 

저는 감사할 일도, 용서를 청할 사람들도 너무너무 많습니다. 살아오면서 많은 분들의 은덕을 입었지만, 저는 그분들께 실망만 안겨드렸습니다. 칠죄종(七罪宗)에 매인 인간적 욕망과 능력의 한계 때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저를 사랑하고 도와주셨는데 실망했던 분들께 크신 자비를 구합니다. 저로 인해 상처받았던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누구에게도 더 이상의 미움이나 섭섭함이 없습니다. 잠시의 만남까지도 모두 감사하고 오직 한 마음, 사랑하는 마음뿐입니다. 제가 가는 영원한 걸음에서 여러분을 위해 부족함 없이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감사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또 만납시다. "Omnia, Dominum! Deo Grat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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