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악의 심연

샌. 2012. 8. 8. 15:50

더위를 잊기 위해 스릴러 소설을 골랐다. 막심 샤탕의 <악의 심연>이다. 이틀에 걸쳐 읽었는데 어젯밤에는 무서워서 문을 꽁꽁 잠그고 잤다. 더위를 잊으려다 도리어 더위를 더 맞이한 셈이 되었다.

 

소설에는 인육을 먹는 등 너무 잔혹한 장면이 나온다.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한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뒷 느낌이 꺼림찍하다. 아무래도 책을 잘못 골랐다. 그러면서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중간에 그만 둘 수 있다. 스릴러의 매력이다. 또한 인간에게는 타인의 비극을 엿보려는 심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도 호기심으로 손가락 사이를 살며시 연다.

 

머리가죽이 벗겨진 여자가 뉴욕의 공원을 발가벗고 도망가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예순일곱 명의 실종사건이 드러나고 범인들의 윤곽이 하나하나 밝혀진다. 범인은 자신의 재물로 소유하기 위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고르듯 대상자를 고른다. 범인은 소유물인 인간에 바코드를 새기고, 사육하고, 고통을 주고, 인육을 먹는다.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지은이는 이런 악의 범행을 통해 현대 사회를 고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소비문화가 발달하면서 우리는 인간성은 사라지고 소유와 욕망만 추구하는 로봇이 되어가고 있다. 사립탐정인 브롤린은 맨허튼의 빌딩을 바라보며 애너벨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사랑을 하고, 그리고 인생의 본질과 조화를 이루며 살지 않아요. 이 세상에서 지내는 짧은 순간을 즐기면서 살지 않죠. 아니 스스로 로봇이 되고 있는 거예요. 소유하고 일하는 데 시간을 쏟아 부으며 아등바등하다가 사라지죠. 애너벨, 보세요. 당신 주위를 좀 둘러봐요. 누구의 목소리가 들리나요? 이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게 누구죠? 우리는 누구에게 복종해야 하죠? 바로 소비자와 생산자, 생산구조에 복종해야 하는 거예요. 이 땅의 로봇들에게 말예요."

 

범인 중 하나인 머독도 이렇게 외친다.

 

"내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니잖소. 나를 비난하지 말아요. 모두 부조리한 사회가 낳은 결과물일 뿐이오.... 지금은 소비도, 미(美)도, 돈도 모두 경쟁 시대요. 돈을 가진 사람이 아름다움도 가질 수 있고, 젊음도 가질 수 있지.... 항상 앞으로 나가야 하고 개혁하고 생산하고 소비해야 해요. 나는 그 틀에서 자랐소. 부모의 보살핌이 아니라 텔레비전과 잡지, 광고, 거리의 간판 그리고 어른들의 잔소리가 나를 키운 거요. 심지어 내가 배운 학문까지 모든 것이 경쟁과 소비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거요. 그러나 나를 꾸짖지 마시오!"

 

미국식의 구조에 프랑스식의 철학을 말하는 게 막심 샤탕의 매력이라고 한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빠른 전개도 좋다. 그러나 지은이의 이름은 달콤한데 소설 내용은 정반대다. 앞으로 이런 류의 책은 일부러 찾아볼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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