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두 개의 문

샌. 2012. 7. 17. 14:35

 

 

2009. 01. 20

03:00 경찰 특공대 출동 명령
03:30 현장 도착
06:16 진압 크레인 설치
06:30 컨테이너 투입
06:50 망루 진입
07:06 화재 발생. 철거민 5명, 특공대원 1명 사망

 

2009. 02. 09

검찰, 철거민 7명 구속 기소, 15명 불구속 기소

 

2009. 10. 28

용산 1심 재판부, 망루 생존 철거민 전원 유죄 판결

 

2010. 11. 11

대법원, 망루 생존 철거민 7명에 원심(4~5년) 확정 판결

 

'두 개의 문'은 2009년 1월 20일에 일어났던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생존권을 호소하며 남일당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고 농성을 시작했던 철거민들은 갓 하루가 지나 불에 탄 시신으로 내려왔다. 살아남은 자들은 범법자가 되어 지금도 형을 살고 있다. 참사의 원인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불법폭력시위가, 반대편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원인이라고 한다. 법원도 검찰의 주장을 인정했다. 이 영화는 현장에서 찍은 생생한 필름과 진압 작전에 동원되었던 특공대원의 생생한 육성, 변호인과 관계자들의 증언을 엮어 만들었다.

 

참사가 일어난지 벌써 3년이 넘게 흘렀다.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가는 사건을 영화가 다시 고발하고 있다. 이 영화는 국가폭력에 대한 증언이다. 당시의 긴박했던 현장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충격적이다. 철거민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지도 않고 하루 만에 군사 작전하듯 공격했다. 망루 안에 휘발유와 신나 등 인화물질이 있다는 걸 알고서도 경찰 지휘부는 무모한 명령을 내렸고 참사로 이어졌다. 물론 폭력시위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할 일 중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없다. 철거민뿐 아니라 현장에 투입된 경찰 특공대원 모두가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이다.

 

나는 그때 히말라야의 산길을 걷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용산 참사 소식을 들었다.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네팔의 분위기에 젖어 있던 나에게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굉장히 낯설었다. 분노보다는 한숨이 먼저 나왔다. 우리가 이룩해 놓은 것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용산 참사로부터 자유로운가? 영화 말미에 나온 어느 분의 말대로 용산 참사는 국민을 우습게 아는 정권이 저지른 야만적인 폭력이다. 정권을 그렇게 길들인 것은 바로 우리의 책임이다. 국가폭력에 대해서 내 일이 아니라고 입을 다물고 방관했다. 용산 참사는 그 결과로 생긴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용산 참사의 원인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다. 과격 농성을 한 철거민 책임으로 볼 수도 있고, 정치적 판단에 따라 과잉 진압을 한 경찰 책임으로 볼 수도 있다. 또는 양비론의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양비론 입장을 취할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비폭력 저항이어야 옳다. 그러나 큰소리치는 사람이 이기는 사회 분위기에서 수동적 저항과 비판에는 한계가 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제삼자가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용산 참사를 통해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읽어야 한다.

 

남일당 건물 옥상에 있던 망루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다고 한다. 영화 제목으로 쓰인 '두 개의 문'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두 개의 문이란, 하나는 생명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문이 아닐까? 우리가 선택하고 드나드는 문은 과연 어느 쪽일까? 우리가 가는 길이 생명의 길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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