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우주의 풍경

샌. 2012. 7. 16. 12:27

<우주의 풍경>(The Cosmic Landscape)은 '끈 이론'과 '메가버스'(Megaverse, 다중우주)를 주제로 한 교양과학서이다. 제목에 나오는 '풍경'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끈 이론에서 유도되는 가능한 진공들의 공간을 말하는 과학 용어다. 메가버스로 대변되는 우주의 풍경에는 무한한 종류의 우주가 무한하게 출현할 수 있다. 이 책은 유니버스(Universe)에 익숙한 우리의 우주관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책의 초반부에는 '인간 원리'에 대한 설명이 길게 나온다. 우리 우주는 왜 생명체가 존재하도록 설계된 듯 보이는 것일까? 자연법칙은 생명과 인간이 탄생되도록 미세 조정된 것처럼 보인다. 만약 자연법칙이나 물리상수 중 하나가 조금만 달라졌어도 우주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하지 못하고 생명도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우연의 산물일까, 아니면 창조주의 의도가 개입된 것일까? 아니면 우주가 지금 같은 법칙을 가지게 된 것은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일까?

인간 원리는 우주론자를 괴롭히는 문제 중 하나다.

 

생명에 호의적인 우리 우주의 우연은 한둘이 아니다.

 

- 우주는 미세하게 조정되어 있다. 그것은 이상적인 속도로 팽창했다. 만약 팽창이 너무 빨랐다면 우주의 모든 물질들은 은하, 별, 그리고 행성으로 응축될 기회를 갖기 전에 확산되고 분리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만약 초기 팽창이 충분한 추진력을 갖지 못했다면, 우주는 구멍 난 풍선처럼 곧바로 쪼그라들었을 것이다.

 

- 초기 우주는 너무 덩어리지지도, 너무 매끄럽지도 않았다. 만약 우주가 실제보다 더 덩어리졌다면 수소와 헬륨이 은하로 응집하기 전에 블랙홀이 되었을 것이다. 모든 물질은 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블랙홀 내부 깊은 곳에서 나오는 어마어마한 강력한 힘으로 으깨지고 말았을 것이다. 반면 초기 우주가 너무 고르게 분포했다면, 덩어리가 전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은하, 별, 그리고 행성으로 이루어진 우주는 초기 우주의 물리학적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나올 수 있는 생성물이 아니며, 그것은 희귀하고 우리에게는 큰 행운인 셈이다.

 

- 중력은 우리를 지구 표면에 붙잡아 놓을 정도로 강하지만, 다윈의 진화 과정이 지적 생명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수십억 년 대신 수백만 년 안에 별을 완전히 태울 정도로 별을 내부 압력을 높일 만큼 강하지는 않다.

 

- 물리학의 미시 법칙이 조립식 장난감 블록 같은 생명의 분자들을 만드는 원자핵과 원자의 존재를 허용한 것은 그저 우연이다. 게다가 그 법칙들은 탄소, 산소, 기타 필요한 원소들이 1세대의 별들에서 '조리'되고 초신성을 통해서 퍼뜨리기에 딱 적당했다.

 

이 책은 지은이인 레너드 서스킨드(Leonard Susskind)는 끈 이론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다. 지은이는 끈 이론의 최신 성과를 설명하면서 우주가 하나가 아니라 수없이 많다는 '메가버스' 개념을 받아들이면 '인간 원리'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한다. 끈 이론에서 예측하는 우주의 수는 10의 500승에 이른다.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숫자다. 각각의 호주머니 우주는 모두 다른 법칙과 우주 상수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가 우리 우주다. 생명 탄생을 위해 미세 조정된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무수한 스펙트럼 중의 하나일 뿐이다.

 

메가버스 개념은 혁명적인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러나 정말 무수한 우주가 존재하는지는 확인이나 검증할 방법은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가 맞다면 각각의 우주는 물질이나 정보가 서로서로 철저히 차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이론물리학의 위대한 점이면서 한계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리 우주의 탄생은 빅뱅으로 설명되었다. 밀도가 무한대인 하나의 점에서 대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터널링 현상으로 설명하면 무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진공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와 양자 요동으로 들끓는 공간이다. 아직도 우리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우주의 90% 이상을 차지한다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의 정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블랙홀에 사건의 지평선이 있듯이 우리 우주에도 관측 가능한 지평선이 있다. 그러나 호킹에 의해 블랙홀이 증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평선 너머의 블랙홀 내부의 정보를 알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우리 우주의 지평선 너머의 세계도 현재는 관측 불가능하지만 블랙홀과 마찬가지로 양자역학적으로는 건너편에서 오는 정보가 있을지 모른다. 지은이는 우주의 배경 복사를 지평선 너머에서 오는 신호로 파악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이 신비라는 걸 느끼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광막한 공간에 두렵기까지 하다. 우리 우주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무한개로 된 우주의 풍경은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만큼 사색하고 꿈꾸는 인간 존재는 위대하다. 만약 인간이 없다면 이 우주는 얼마나 쓸쓸할까? 그러나 이 역시 인간 원리에 갇힌 생각일지 모른다. 인간은 이유와 의미를 묻지만, 우주는 그저 있는 대로 존재할 뿐이다.

 

교양과학서지만 내용은 상당히 어렵다. 물리를 전공한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어떤 부분은 그냥 건너뛰며 읽었다. 지금 우리 시대는 메가버스 개념이 씨앗 형태로 자라는 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래 어느 때에는 사람들에게 메가버스가 보편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어쩌면 다른 우주와의 교신도 가능할지 모른다. 다차원세계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열릴 수도 있다. 과학 이론은 항상 변해왔고, 지금도 변하고 있다. 불가능한 것은 없다.

 

<우주의 풍경>은 최근 과학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논쟁과 우주론의 최신 개념을 소개하면서 독자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그러나 읽기에 좀 더 수월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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