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샌. 2012. 8. 5. 11:34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된 후 작은 소동이 있었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도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빼라고 출판사에 통보한 것이다. 결국은 없었던 일로 되었지만 경직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 해프닝이었다.

 

그 뒤에 국회 본회의에서 시인은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발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박병석 부의장님,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도종환입니다. 저는 오늘 착잡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국회의원이면서 시인입니다. 제가 쓴 시는 10년 전부터 국정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고, 학생들이 배우고 공부해 왔습니다.

 

공문에 의하면 수정보완 이행 결과가 미진하면 검정이 취소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과서 수정보완은 띄어쓰기, 맞춤법, 어휘 잘못 등이 발견됐을 때 권고해왔지 이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자한 출판사로서는 사실상 제 시를 빼라는 권고를 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번에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빼줄 것을 요구한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란 시입니다. 수많은 국민들이 이미 알고 있는 시입니다. 이 시에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습니까? 정치적인 문제가 있습니까? 학생들이 읽어서는 안 됩니까? 지난 10년 동안 교육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된지 한 달 됐습니다. 아직 활동도 안 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됐다는 이유만으로 교과서에서 작품을 빼도록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에 대한 잘못된 편견입니다. 김춘수 시인도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분의 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온 국민이 알고 있는 시'꽃', 이 시도 교과서에서 빼야 합니까?

 

존경하는 선배 동료 여러분, 이 자리 모두는 지역과 부문의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을 대변하고자 임기 동안 국회의원의 직무와 양심에 따라 성실 임무를 이행할 것에 서약했습니다. 의정활동을 어린 학생들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19대 국회를 시작하며 특권 내려놓자고 하는 마당에 오히려 정치인을 편견으로 바라보고 정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일에 교육 당국이 앞장서면 안 됩니다.

 

이번에 한 교과서는 제 시를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그 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묻게 하고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행복을 위해 살아야 하고, 자기 밖의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평가가 정치적, 파당적 의견을 전파하는지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 부탁 드립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는 도종환 시인이 자신의 살아온 여정을 진솔하게 회고하는 자전 에세이다. 가난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에서 좌절과 방황, 전교조 활동에 의한 해직과 투옥, 불의에 대한 투쟁, 고난과 질병 등 파란만장했던 인생 역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도 시인의 시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가난, 외로움, 좌절, 절망, 방황, 소외, 고난, 눈물, 고통,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의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이 모든 곤경을 딛고 일어서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현실적 악조건은 자신을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시인의 삶과 시는 서로 유리된 게 아니다.

 

부드러운 서정시인으로 알고 있는 시인이 내적으로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음에 놀랐다.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것에 대해 처음에는 의아하게 여겼으나 지금은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의정 활동을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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