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흔 개의 봄

샌. 2012. 6. 12. 08:00

'역사학자 김기협의 시병일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치매에 걸린 아흔 노모를 돌보고 있는 아들의 기록이다. 2007년 6월에 갑자기 쓰러진 선생의 모친은 병원과 요양원에서 지내는데, 선생은 집과 시설을 오가며 극진히 보살펴 드린다. 책에는 2008년 11월부터 2010년 11월까지 2년간의 기록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지인들에게 어머니의 상태를 전하려고 쓰기 시작했는데 내용이 잡지에 연재되면서 책으로까지 출판하게 되었다.

선생은 4남매 중 셋째 아들로 어머니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첫째와 둘째만 편애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선자라고 여기며 불화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쓰러지고 난 뒤부터 간병하는 과정을 통해 어머니와 화해하기 시작한다. 이 기록은 모자 사이의 갈등과 화해를 진솔하게 담고 있다. 또 형제들 사이에 가치관의 차이로 말미암은 다툼도 그대로 전한다. 단순한 효나 모성 찬양이 아니라 이해와 소통을 통해 화해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선생의 모친은 일제 강점기에는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의 첫 여학생이었고, 국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이화여대 교수로 재직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일찍 남편을 잃고 홀몸으로 자식을 길렀다. 퇴직 후에는 부처님 제자로 귀의해 구도자의 삶을 사셨다. 그런 분이 치매 증상을 보이다가 갑자기 쓰러지셨고, 튜브 피딩(Tube feeding)으로 연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선생의 극진한 간호로 점차 건강을 회복하신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라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수도 없이 자문했다. 그만큼 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정성은 지극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도 틀릴 수가 있다. 하루가 멀다고 요양원에 찾아가 어머니와 대화하고, 노래를 가르치고, 같이 불경을 외운다. 어머니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들만이 아니라 선생의 부인도 대단하시다. 이런 아들을 둔 어머니는 비록 치매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지만 무척 행복할 것 같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나 자신을 많이 자책했다. 외할머니도 말년에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나는 외할머니에게 못된 외손자일 뿐이었다. 병중에서 한 번도 애틋하고 살갑게 대하지를 못했다. 중학생 때부터 외할머니 손에서 컸는데, 돌아가신 지금은 무척 후회된다.

선생의 모친은 곱게 늙으신 분이다. 다행히 약한 치매에 걸렸고, 유머나 활기를 잃지 않으셨다. 가끔 쌍욕을 하지만 주변 환자나 간병인도 즐겁게 해 준다. 2010년 6월 14일 기록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3시에 도착해서 한 시간 반가량 모시고 있었는데, 거의 내내 '행복', '기쁨', '고마움'을 노래하셨다. 단둘이 앉아 있을 때도 평상 화법 쓰실 틈이 별로 없이 노랫가락 화법이 이어졌다. 노랫가락 화법은 얼렁뚱땅하는 데도 많이 쓰이지만, 오늘은 내내 믿음이 가득 실린 '인생 찬가'였다. "이곳은 참 좋은 곳이에요. 꽃도 있고, 나무도 있고, 숲도 있고, 바람도 있고, 햇빛도 있어요. 이렇게 좋은 곳인 줄을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합니다, 행복합니다.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이곳'이 처음에는 세종너싱홈을 가리키는 곳이었는데,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이 세상으로 바뀐다.'

요양원에 계신 아흔 살 치매 노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경탄할 만하다. 얼마만큼 수양이 되어야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치매 환자는 세속적인 무언가에 집착을 보인다. 그런데 마음을 비우고 아름다운 세상을 찬양할 수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선생도, 선생의 모친도, 부럽고 감사하다. 이 모습을 보면 늙고 병든다는 것도 불행만은 아니다.

<아흔 개의 봄>은 한 효자의 단순한 시병기(侍病記)를 넘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아프기 전에는 늘 티격태격했지만 침대에 누워 있는 의식이 미약한 어머니를 보며 자신을 얽매었던 시비지심에서 해방된다. '엄마 찾아 60년'이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모르는 분들에게 읽어달라고 책을 내면서 이것 하나만은 꼭 강조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끼리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괴로움도 함께 나눈다는 사실. 운명이 주는 괴로움은 아끼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통렬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운명에 대한 원망이 아끼는 사람에 대한 원망으로 모습을 바꿔서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어떤 고통 앞에서도 주어진 인연을 등지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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