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더 바랄 게 없는 삶

샌. 2012. 9. 4. 12:34

책장에서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1)의 책 한 권을 꺼내 다시 읽어 본다. 야마오 산세이 하면 그분이 살았던 야쿠 섬과 7,200살의 조몬삼나무가 떠오른다. <혼자서 사는 즐거움>에 이 나무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 나무를 만나러 야쿠 섬에 가리라고 다짐했던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은 선생이 야쿠 섬에 살면서 쓴 에세이집이다. 선생은 1960년대부터 대안문화공동체 운동을 하다가 1977년에 가족과 함께 섬에 들어와 살았다. 버려진 마을을 다시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틈틈이 시와 글을 발표했다. 삼라만상 온갖 것이 모두 신성한 존재임을 깨닫고 지구의 미래와 희망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이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을 통해 그런 선생의 생각과 삶을 살펴볼 수 있다.

 

가미미에 군이 배에서 일을 하다가

실수로 식칼을 바다에 떨구고 말았다

그걸 보고 선장이

너는 용왕님에게 칼을 들이댄 셈이다

바다에 사과해라

고 말했다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잠시 뒤에 역시 사과를 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요

라고 가미미에 군은 말했다.

 

선생이 쓴 이 시가 선생이 세상과 자연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잘 말해준다. 선생에게 모든 사물은 인간과 동등한 존재다. 아니, 인간과 분리되지 않는 한몸이다. 작은 돌멩이에서도 내재된 신성을 읽는다. 선생은 그렇게 겸허한 마음으로 주변의 풀이며 나무, 흙, 개미, 조개, 별 이야기를 한다.

 

선생이 몸이 아파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수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위암이 진행된 상태였다. 선생은 섬으로 돌아와 차분히 자택 요양을 하며 죽음을 맞는다. 죽음을 대하는 선생의 마음가짐도 책 끝에 소개되고 있다. 우주와 한몸임을 체현하며 산 분인 만큼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변화며, 우리는 병이나 죽음으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은 모두 영겁의 한 조각에 불과하며, 그것을 바르게 알고 끝까지 찬양해 가는 일이야말로 선생의 인생에서 선생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깊은 지혜였다고 고백한다.

 

사람과 일로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지 않아도 되는 삶.

조용히 내면의 뜰에 빗자루질을 하며 살 수 있는 삶.

가진 것은 도시만 못해도 마음이 편한 삶.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뛰놀며 자랄 수 있는 자연환경이 주어진 삶.

육체노동이 있는 삶.

흙이 있는 삶.

자기만의 시간을 언제나 가질 수 있는 삶.

 

선생은 이런 삶을 찾아 도시를 떠나 야쿠 섬에 들어갔다. 그리고 한 포기의 풀도 존경하고, 벌레 한 마리로부터도 배우는 삶을 살았다. 이는 내가 꿈꿨던 삶이기도 했다. 선생은 꿈을 현실로 변화시켰지만, 바보는 여전히 꿈만 꾸고 있을 뿐이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정록  (0) 2012.09.13
시간의 숲  (0) 2012.09.04
소설 공자  (0) 2012.08.28
도둑들  (0) 2012.08.25
아름다운 마무리  (0) 2012.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