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무현금 / 박이정

샌. 2012. 10. 16. 08:35

깜깜한 새벽

매미가 화살처럼 쏴 올린

높은 울음 한 줄

통유리창 밖

새벽하늘화선지 한 장을 펼친다

메기고 받고 받고 메기고 끊어졌다 이어지는

맴 매앵~ 맹~ 딩 디잉~

빗장 풀린 자하문 틈새로

매미의 장삼자락날개가 들썩거린다

문 밖 조석고갯길이 파르스름 튀어오른다

인왕산치마바위 꼭대기 하현달 시위가 부르르 떤다

팽팽한 활대를 바짝 당겼다 놓는다

한 평 마당의 고추나무 붉은 별이 세마치장단을 친다

수묵담채빛깔 소리들이

새벽하늘화선지에 변곡선을 긋는다

 

무현금 가락에 취한 내 숨소리가

오금을 펴고 가느다랗게 일어난다

사박사박새벽새벽

소리 위를 걷는

나,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황 대 태 협 고 중 유 임 의 남 무 응*

 

어둠에서 풀려난 하루가

빛살을 켜고 있다

 

* 한국의 12음계

 

- 무현금 / 박이정

 

 

"당신이 여기서 꽃을 꺾어 흔들면 저 멀리 있는 별도 흔들린다." 시를 읽으며 어느 물리학자가 한 이 말이 떠올랐다. 물리학자는 중력파에 의해 우주의 모든 물질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설명하려고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과학적 관점이든 직관에 의해서든, 모든 존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서로 묶여 있다고 현자들은 말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는 한 사람의 눈물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는 큰 몸의 일부분이다.

 

새벽 매미의 울음 한 줄이 주변에 공명을 일으킨다. 온 존재가 함께 어우러진 노래와 춤이 된다. 그러고 보면 이 우주는 신비한 댄싱이고 리듬인지 모른다. 모든 존재는 고유한 진동수를 가진 악기다. 호수에 떨어지는 빗방울 무늬처럼 우주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다. 수십억 광년 너머에 있는 별의 노랫소리에 나비가 날개를 팔락인다. 당신이 보낸 파문이 내 가슴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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