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나룻물 강생원의 배삯 / 곽재구

샌. 2012. 10. 28. 18:25

나룻물 강생원

젊어서 제월리 나루터의

뱃사공이었지요

 

남원 장 보러

옥과 입면 사람들

강생원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건넜는데요

 

배가 남원 땅에 다 닿으면

장꾼들에게 꼭 이렇게 말하지요

어 참 봄볕도 좋다

돌아올 때 꽃 한 짐 꺾어 오시오

 

이를테면

그 말이 곧 뱃삯이었는데

장 보고 오는 동네 사람들

돌아오는 길에 진달래꽃 꺾고

살구꽃도 꺾고

수선화꽃이랑 조팝꽃도 실컷 꺾어서는

한아름씩 강생원에게 주었겠지요

 

한 배 가득

장 보따리와 꽃다발을 싣고

다시 강을 건너며

나룻물 강생원 꼭 이렇게 말하지요

 

어 참 꽃 좋다

어 참 세상 이쁘다

 

- 나룻물 강생원의 배삯 / 곽재구

 

 

사람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삶이 축제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바라기 때문에 삶의 핵심을 도리어 놓치는지도 모른다. 나룻물 강생원의 "어 참 세상 이쁘다"라는 독백을 우리는 잃어버렸다. 세상에 대한 감탄과 경이가 사라졌다. 아는 것이 병통이 된다. 밑바닥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인생에 대한 긍정, 생명의 힘을 발견한다. 제월리 나루터 뱃사공에게서 노자가 말하는 무지무욕(無知無欲)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마음속에 꽃 한 송이 환하게 피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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