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승자독식사회

샌. 2012. 10. 17. 11:31

전에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병폐를 후련하게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지금은 20:80의 세계를 넘어 1:99의 세계라 부르기도 한다. 이런 부와 소득의 독점은 우리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현상이다. 자본주의가 가야 할 운명적 길인지도 모른다.

 

로버트 프랭크과 필립 쿡이 쓴 <승자독식사회>(The Winner-Take-All Society)는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현대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이기기만 하면 모든 것을 차지하는 현실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강화되고 있는지를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 죽음의 제로섬 게임을 멈출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한다.

 

승자독식은 원래 스포츠나 연예계에서 통용되었으나 이제는 시장뿐만 아니라 교육, 의료, 예술, 언어, 법률, 패션, 영화, 정치 등 모든 분야로 확산되었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종이 한 장도 되지 않지만 결과는 극단적이다. 1등에게만 부와 권력을 몰아준다. 나머지 사람들은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가망 없는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래서 대다수 삶은 폭력적이고 황폐해진다.

 

우리나라도 IMF를 겪은 후 이런 변화가 두드러졌다. 경쟁과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시장경제 원리가 글로벌이라는 이름 아래 정착된 것이다. 국부는 늘어나지만 살기는 점점 어려워진다고 어디서나 아우성이다. 부익부 빈익빈,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많은 사람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분명 비극이다. 무모한 경쟁에 따른 사회적 비용의 낭비는 엄청나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 정신에 가해지는 폭력은 우리 사회를 비인간적인 무대로 만들고 있다. 빈발하는 강력범이나 패륜범의 바탕에는 이런 사회적 구조 문제가 상당 부분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 자체가 변화해야 할 당위성은 충분하다.

 

사실 이 책을 정독하지는 못했다. 지은이의 원인과 해법이 명쾌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제기해 준 것으로 만족한다. 맨 끝 장이 '승자독식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였는데 가장 관심 있게 읽었다. 지은이는 자본주의의 틀은 유지하면서 경쟁 체제를 완화하는 방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내가 볼 때는 상당히 온건한데 사실 이것마저도 얼마나 실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은이 역시 앞으로 당분간은 승자독식의 시스템이 더 강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의 정책을 통해서 소득불평등이 개선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희망은 아직 있다고 진단한다. 지은이는 세금을 통해서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자고 주장한다. 그중에서도 누진소비세 쪽에 비중을 둔다. 아무래도 자본 중심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고, 이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지은이의 생각 중에는 '조금 덜 일하는 사회' 만들기와 '문화의 회복' 운동도 있다.

 

그 무엇보다도 가장 평등이 요구되는 분야에서부터 보편적 복지가 시행되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복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지만, 교육, 의료, 주택은 각자의 소득에 관계없이 기본적인 혜택을 받아야 한다. 돈이 없어 공부를 못하거나 병을 고치지 못하는 세상은 용납하기 어렵다. 이런 기본적인 영역에서부터 삶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자본주의의 독소를 하나하나 빼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글쎄, 우리는 앞으로 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을까? 돈만의 불평등이 아닌, 타인과 교류하고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서의 평등도 사라진다면 지옥은 멀리 있는 곳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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