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피에타

샌. 2012. 9. 23. 12:10

 

 

나에게는 무척 거칠게 느껴진 영화였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눈 감고 싶은 추악한 현실과 인간의 악한 본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불편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복수를 통해 돈으로 미쳐버린 세상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무대가 된 청계천 공구상가의 어두운 분위기가 영화와 잘 어울린다. 거기는 세상에서 낙오된 패배자들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간다. 주인공 '강도'는 빌려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채무자를 불구로 만들거나 목숨까지 뺏는 악마 같은 짓을 서슴치 않는다. 그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장 잔인한 가해자가 된다. 돈의 노예가 된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다. 세련되게 포장하기는 했지만 본질에서는 다름이 없는 우리들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대사에서 자주 나오는 "돈이 뭐예요?"라는 말은 결국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지금 세상에서는 돈이 욕망, 분노, 증오, 좌절, 절망의 처음이자 끝이다. 돈이 목적인 세상에서는 인간 생명마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병들고 타락한 세상의 징후를 우리는 수도 없이 접하고 있다. 이 영화는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악마의 화신이었던 '강도'는 결국 속죄를 하고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다. 새벽 도로 위에 그어진 붉은 핏자국이 마지막 장면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다. 그때 강도와 자본주의가 같은 의미로 겹쳐지며 강도의 죽음이 자본주의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나에게는 비쳐졌다.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인간주의로 넘어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영화는 숙고하게 한다.

 

강도를 변화시킨 게 모성과 여성성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여성성을 통해 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관점을 감독이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강변에 심은 나무 한 그루의 연약한 생명을 통해 희망을 읽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아들의 복수를 위해 강도에게 접근하고 고통을 주지만 마지막에는 그녀 자신도 인간에 대한 연민을 나타낸다. 강도도 불쌍한 인간이란 걸 알게 된다. 악을 악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퇴치할 수는 없다. 강도를 인간의 마음으로 되살린 게 무엇이었는지를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피에타'는 이번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러나 묵직한 주제에 비해 영화적 완성도나 예술성은 좀 미흡하지 않나 하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지만 1억대의 예산으로 한 달도 안되는 촬영기간에 이만한 영화를 만들고 최고의 상까지 받았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끝없이 질문을 던지는 김기덕 감독의 자세가 존경스럽다. 좀 불편한 감독의 표현방식이야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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