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샌. 2012. 11. 10. 14:02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신라 시대 경주에 살던 사람들의 놀이나 취미는 무엇이었을까? 세종대왕 때 한양 사람들이 쓰던 말은 어땠을까? 지금 우리가 얼마만큼 알아들을 수 있을까? 교과서에서 가르쳐주는 연대기적 역사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삶이 궁금하다. 죽은 유적 대신 생생한 그들의 얘기를 듣고 싶다.

 

알베르토 안젤라(Alberto Angela)가 쓴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이 바로 그런 궁금증을 없애 주는 책이다. 로마 제국의 전성기였던 기원후 115년 어느 날, 트리야누스 황제 치하의 로마의 하루를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시간대별로 생생히 그리고 있다. 당시 제국의 인구는 약 5,000만 명이었고, 로마에는 150만 명 정도가 살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 당시 로마에 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로마의 구석구석과 로마인의 삶을 세밀히 보여준다.

 

부유층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로마 사람들은 '인술라'라고 하는 공동주택에 살았다. 대략 6층 높이였는데 요사이로 치면 아파트에 해당된다. 1층에는 돈 많은 사람이 살았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주거 여건은 열악했다. 그때도 인술라에 대한 투기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은 임대료를 내며 살았다. 로마의 골목은 사람들로 들끓고 시끄러웠다. 한쪽 귀퉁이에서는 아이들이 모여서 글자를 배우고 있었을 것이다. 골목 선생은 천민 취급을 받았다는 것이 특이하다.

 

노예 시장도 있었다. 주로 전쟁 포로들이 노예로 거래되었고, 소유한 노예의 숫자는 부의 표시로 여겨졌다. 정식 로마인이라면 한 집에 대체로 5명에서 12명의 노예가 있었다. 그러나 일부 귀족은 수백 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있었다 한다. 당시 제국은 노예가 아니면 지탱되지 못하는 사회였다. 육체적인 노동은 대부분 노예의 몫으로 노예가 아니면 로마 경제가 돌아가지 않았다. 그 옛날 로마에서 노예가 하던 일을 현대에는 가전제품이 하고 있다.

 

특이한 건 공중목욕탕이다. 로마에만 1천 개가 넘는 공중목욕탕이 있었는데 큰 곳은 3천 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한 변의 길이가 300m가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였으며 그 안에는 도서관도 있었다. 요사이도 이만한 스파는 없을 것이다. 로마인은 여기서 사람을 만나고 상담을 하고 휴식을 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들락거렸다니 로마인들만큼 목욕을 좋아하는 민족도 없었던 것 같다.

 

영화에서 보던 원형경기장의 잔인한 장면도 자세히 그려진다. 사형수들은 수만 명의 관중이 열광하는 속에서 맹수의 밥이 되었다. 검투사 시합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죽었다. 관중들은 더욱더 자극적인 공연을 원했다. 어느 해의 승전기념공연에서는 120일 동안에 1만 마리의 동물과 역시 1만 명이 넘는 검투사가 죽었다고 한다. 지은이는 로마인의 잔인한 취향을 우리가 영화나 TV를 통해 피를 흘리는 폭력물을 즐기는 것과 같게 본다. 형식만 우아하게 변했다는 것이다.

 

로마인의 성생활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그 당시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현대보다 못하지 않았다. 만약 로마인이 지금의 우리를 본다면 성에 대해 너무 많은 규칙을 정해 놓고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 이런저런 금지 목록에 그들은 어리둥절해할지 모른다. 로마인들에게 성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즐기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노예들이 로마인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2천 년 전에 이미 10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살던 로마는 현대적 개념의 상하수도 설비가 되어 있었다. 지금 우리가 타임머신을 타고 로마를 찾아간다고 해도 도시의 규모와 설비에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출한 오물은 하수도를 통해 강으로 흘러내려 갔다. 집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는 드물었고, 로마인들은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지 않는 공중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았다. 화장실은 공중목욕탕과 마찬가지로 사교장소 중의 하나였다.

 

<고대 로마인의 24시간>은 1,900년 전 로마의 하루를 영화 보듯이 그려내고 있다. 호화로운 상류층의 연회에서 뒷골목 음식점에 이르기까지 마치 당시의 로마 거리를 걸어 다니는 듯하다. 길거리의 사람들의 표정까지 생생히 잡힌다. 무척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 책은 이탈리아에서 4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책이 나온다면 그에 못지않은 인기를 끌 것 같다. 예를 들어 1,500년 전 경주의 하루를 이렇게 그려낼 사람은 없을까?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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