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제주 올레길 420km

샌. 2012. 11. 27. 09:45

며칠 전에 제주도 올레길 전 구간이 완성되었다. 26개 코스에 총 길이가 420km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길이와 비슷하다. 한 개 코스가 하루에 걷기 적당하게 되어 있으니 전체를 걷는 데는 한 달 정도가 걸린다.

 

당연히 걸어보고 싶다. 결심만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가능하다. 내가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올레길 몇 개 코스 정도는 걸어 보았다. 나만 아직 올레길에 서지 못했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몇 년 전에는 스페인의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유행했다. 퇴직을 한 뒤에 바로 그 길을 걷는 게 목표였었는데 아직도 희망 사항으로만 남아 있다. 거기는 평균거리가 거의 900km가 되니 올레길과는 비교가 안 된다. 솔직히 지금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동안 생각도 변했다. 길을 걷기 위해 스페인까지 날아갈 필요가 있느냐, 하는 회의가 든다. 2009년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와서는 멀리까지 나가는 욕심이 사라졌다. 뒷산길이 제일 편안하고 좋다. 나이가 드는 탓인지 모른다.

 

그래도 올레길 전체가 개통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니 가슴이 뛴다. 아무래도 내년 봄에는 가봐야겠다. 말 그대로 놀멍쉬멍 걸어보고 싶다. 한꺼번에는 어렵고 두 번으로 나누어 걸을 수는 있을 것 같다.

 

혼자도 괜찮고 동행이 있어도 좋다. 그런데 망설여지는 건 엉뚱한 데 있다. 코 고는 것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면 이것 때문에 제일 걱정이 된다.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동행이나 옆 방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되니 조심스러워서 나 자신도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미뤘던 코골이 수술을 이참에 받을까?

 

죽는 날까지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복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죽기 전날까지 신발에 흙을 묻힐 수 있는 게 내 소망이다. 하늘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복을 허락했을까? 걸을 수 있는 건강한 두 발이 있을 때 열심히 걸어야겠다. 그래야 이 세상을 뜰 때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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