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토론TV가 있었으면

샌. 2012. 12. 30. 10:27

이번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되느냐에 관심이 있다 보니 낮에도 TV를 자주 보게 되었다. 지상파 방송은 대선 관련 보도를 거의 안 해서 종편을 주로 봤다. 종편이 여당 편향이라는 걸 알지만, 여와 야를 대변하는 사람들 사이의 토론은 그런대로 봐 줄 만했다. 내가 보기에는 4개의 종편 중에서 그나마 MBN이 가장 나았던 것 같다.

 

선거 기간 중 종편에 자주 출연했던 사람들이 있다. 정치전문가, 정치평론가라고 부르던데 일부는 정말 자질이 안 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 치 혀만 믿고 까불어대는 세객(說客)이라 불러 적당한 사람들이었다. 어떤 이는 당파에 너무 편향적이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서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이번에 박근혜 정권 인수위의 수석대변인으로 뽑힌 윤창중이었다. 이 사람이 화면에 나오면 그냥 채널을 돌려 버렸다.

 

선거가 끝나고 나니 공정한 보도를 하는 TV 방송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토론을 주로 하는 케이블 채널이 있었으면 싶다. 주류 방송에서 소외된 약자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방송이었으면 한다. 그렇다고 꼭 친야 성향일 필요는 없다. 여나 야를 모두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정치적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선거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다섯 명의 노동자가 잇달아 목숨을 버렸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로 철탑 농성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쌍용자동차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왜 그들이 농성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또 사측의 주장은 무엇이고 어떤 점에서 대립하고 있는지 모른다. 쌍용자동차에 왜 문제가 생겼고 해고 노동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모든 사안에 대해 TV에 나와 서로의 주장을 밝히고 설명하는 시간을 충분히 줘야 한다. 필요하면 공개적인 토론이라도 해야 한다. 만약 토론TV가 있다면 종일이라도 방송할 수 있다. 시청자는 그 토론을 보면서 현안에 대해 알게 되고 시시비비를 가려줄 것이다. 법이 잘못되었다면 법 개정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다. 그러면 무고한 노동자가 억울함을 호소하지 못해 목숨을 버리는 일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토론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전에는 지상파 방송에서 주말 밤늦은 시간에 토론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 흐지부지되었다. 예민한 소재는 건드리려고 하지 않으면 한계가 있다. 정치, 노사, 문화, 교육,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직접 당사자들이 출연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번 선거에서 세대간 갈등이 두드러졌는데 서로 외목소리를 낼 게 아니라 한자리에 앉아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눌 필요가 있다. 토론은 국민 통합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국민 의식이 향상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주류 언론에 의해 억울하게 매도당하는 사례는 많다. 변변한 변론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전교조가 그렇고, 최근에는 진보당 사태도 그렇다. 이정희 후보가 대선 후보 토론에 나와서 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듣지 않고는 상대를 알 수 없다. 대부분 국민은 주류 언론으로부터 일방적인 세뇌를 당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늠할 잣대를 뺏긴 것이다. 토론TV는 여론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토론TV가 진보에만 유리한 건 아니다.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진보는 보수를 알고, 보수는 진보를 알게 될 것이다. 알아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다. 건전한 보수는 도리어 더 확고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4대강, 핵발전 등 국민적 관심사인 문제는 몇몇이 모여 공청회만 하지 말고 전 국민이 보는 가운데 확실한 찬반 토론을 했으면 좋겠다. 뭘 알아야 국민이 판단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면에서 제일 바람직한 건 KBS 3TV를 신설하는 것이다.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면서 신문고 역할을 하는 채널이 필요하다.

 

토론TV는 진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국민에게 진실을 알려주는 게 제일 목적이 되어야 한다. 정치적 성향에 편향되지 않은 진지한 모습만 보여준다면 시청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00개가 넘는 케이블 채널 중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만큼 될까? 내가 볼 때는 제일 중요한 게 빠져 있다. 그 이유는 권력을 쥔 자들이 이런 TV를 바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러나 갈등은 숨긴다고 아물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함께 지혜를 모으는 게 조금은 혼란스러워 보일지 몰라도 결국은 나라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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