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논어[15]

샌. 2013. 1. 28. 09:42

맹의자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어긋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번지가 마차로 선생님을 모시고 갈 때 선생님은 그에게 "맹손이 내게 효도에 대해 묻기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라' 했다." 한즉, 번지가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살아 계실 적에도 예의로 섬기고, 장례도 예법대로 치르고, 제사도 예법대로 모셔야 한다."

 

맹무백이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부모는 그대의 병만을 걱정하신다."

 

자유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요즈음 효도란 봉양만 잘하면 되는 줄 안다. 그것쯤이야 개나 망아지도 할 수 있는 일인데, 존경하지 않는다면 다를 데가 없지 않나!"

 

자하가 효도에 대하여 물은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얼굴빛이 문제다. 일이 있을 적엔 어린 사람들이 받들어 드리고, 맛 좋은 음식쯤 웃어른께 드리는 것으로, 글쎄 그걸 효도라 할 수 있는가?"

 

孟懿子 問孝 子曰 無違 樊遲御 子告之曰 孟孫問孝於我 我 對曰 無違 樊遲曰 何謂也 子曰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孟武伯 問孝 子曰 父母 唯其疾之憂

 

自游 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子夏 問孝 子曰 色難 有事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 爲政 5

 

 

제자들과 효(孝)에 대해 나눈 네 가지 대화다. 제자를 가르치는 공자의 교육 방법을 볼 수 있다. 기계적 가르침이 아니라 제자의 상황에 맞게 효를 설명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근기(根氣)가 있기 때문이다. 처지에 맞는 가르침이야말로 제자에게 피와 살이 된다. 맹무백은 아마 병약했던 것 같다. 자신의 건강을 지켜 부모 걱정을 덜어주는 게 효라고 공자는 말씀하신다. 가장 좋은 교육 방법은 이와 같은 일대일 문답식 대화다. 스승은 제자 스스로 깨달음에 나아가도록 인도한다.

 

'孝'를 파자하면 '老'와 '子'로 되어 있다. 자식이 노인을 업고 있는 형상이다. 그러나 이런 전통적 효의 개념은 많이 변했다. 산업사회를 거쳐 핵가족화가 되면서 부모와 자식이 함께 사는 자체가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세태가 되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두 가치관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때다. 옛날에는 당연시되었던 게 지금은 아니다. 많은 가족 문제가 이런 데서 시작된다. 나만 해도 전통과 현실 사이에서 큰 심리적 부담을 느낀다.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유교의 폐쇄적 가족주의다. 가정에서의 효제(孝悌)를 강조하다 보니 밖으로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이 되었다. 공자의 본래 뜻은 이렇지 않았다고 본다.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개인의 의식 발전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잘못된 가족주의는 극복되어야 한다. 유교에서 박애 사상이 부족한 건 유감이다. 가족 사랑을 통해 인류 사랑과 세상 사랑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 앞으로는 가정이라는 관념도 근본적으로 변할 것이다. 그에 맞는 새로운 윤리가 이미 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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