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6) -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샌. 2013. 3. 19. 11:25

함석헌 저작집 6권에는 선생 개인의 인생 역정이 그려진 글이 여럿 실려 있다. '내가 겪은 관동대지진' '내가 맞은 8.15' '내가 겪은 신의주학생사건' 등과, 종교적 체험을 설명한 '이단자가 되기까지'가 대표적이다. '남강, 도산, 고당'에서는 세 분 스승과 만난 일화도 소개되고 있다. 선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알 수 있는 글들이다.

 

신의주학생사건이 일어났을 때 선생은 평안북도 자치위원회 문교부장 일을 맡고 있었다. 소련군이 진주한 뒤 시내는 공포 분위기로 변하고 민심은 흉흉해졌다. 1945년 11월 23일에 학생들이 반소, 반공 시위를 할 때 학생들이 학살당하는 현장에 선생은 있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시위의 주모자로 몰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결국 선생이 월남할 수밖에 없었던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글 곳곳에서 본인이 유약한 인물이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선생의 일생을 보면 불의에 온몸을 던져 싸운 용기 있는 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일제 말기에는 계우회와 성서조선 사건으로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선생은 세상이 가리키는 길보다는 자신의 양심을 따랐다. 3.1운동 이후에 다른 사람들은 다시 관립학교에 들어갔으나 선생은 어제 부른 만세를 권세 앞에서 잘못된 것이라 부인할 수 없어 학교를 포기했다. 일생을 올곧게 살아내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6권에서 인용한 아랫글은 모두 1959년에 쓰인 것이다.

 

 

희랍은 어린애 손바닥만 해도 서양 문명의 횃불을 들었고, 유대는 갓난애기 발잔등만 해도 인류의 나갈 한길을 내지 않았나? 땅이 좁아 못했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로마도 테베레 강 옆 조막 같은 일곱 언덕에서 싸우던 것들이 세운 것이 아닌가. 영국도 북해에서 도둑질해먹던 해적떼가 일으킨 것 아닌가? 사람이 적어서 못했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일을 틀지게 못한 것은 정신이 작고 옅기 때문이요, 정신이 옅은 것은 숨을 깊이 쉬지 못하기 때문이다. 숨이 어디서 오나? 하늘에서 온다. 하늘 기운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정신이 작다.

 

남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은 우리 초가삼간보다 작은 집이다. 내 종교가 큰 종교지, 내 거 되지 못한 종교, 한 사람도 건지지 못하는, 종교가 아니라 종교의 허울이 무슨 위대한 종교일 수 있을까? 제 종교만이 큰 종교다. 제 종교를 가진 한 사람 있어도 온 세상이 다 구원될 것이다. 한 사람이 물에서 나오면 모든 사람이 다 살게 된다.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건진다고 큰 말을 하는 종교는 한 사람도 못 건질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종교도 아니기 때문이다.

 

제발 백성을 좀 제대로 자라게 두어두지! 정치가 뭔 줄 아나? 가만 두는 것이 정치다. 다스린다는 것은 미운 잡초를 다스린다는 말이지, 곡식을 못살게 건드린다는 말이 아니다. 풀은 두면 돋아나는 것이요, 민중은 두면 살아나는 것이다. 개를 둔 것은 양을 지키란 말이지 양이 꼴 먹는 것을 간섭하고 양의 버릇을 개 버릇으로 고치려 하고, 심지어는 그 양을 잡아먹으라고 둔 것은 아니다. 저 씨알의 풀밭을 짓밟는 여우 무리를 내몰고 민중의 양떼의 살을 뜯는 개들의 목에 사슬을 매라!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걸이를 놓지 않으련다. 3.1운동이 몰아쳐 내세워준 이 걸음 늦추지 않을 것이다. 부자는 뚱뚱해 앉았을는지 모르고 세력 있는 자는 자가용 안에서 버크셔처럼 드러누워 갈는지 몰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 걸으련다. 장안 길거리를 두리번거려도 내가 주어 가지라고 떨어진 금덩이는 없을 테니 나는 가난한 순 조선종 틈에 끼어 뒤도 돌아볼 것 없이 걷고 싶다. 영원히 영원히 빠르나 급하지는 않게, 뚜벅뚜벅 걸으나 느리지는 않게, 길이길이 걸었으면!

 

이 세상을 "기다!" 하기 위한 것으로 하는 것은 땅에 붙은 짐승. 하늘을 지향한 혼을 가진 사람에겐 이 세상은 "아니다!" 하기 위한 것이다. "기다!" 하는 모든 철학 거짓 철학, "아니다!" 하는 철학 참 철학. "기다!" 하는 종교 사탄의 종교. "아니다!" 하는 종교 하나님의 종교. 우리가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기다"당 때문이 아니고 "아니다"당 때문이다. "아니다"당은 참 드물다. 때로는 역사가 한 사람의 한 마디에 달린다.

 

얼마나 많은 석가의 씨가 무지한 어머니 손에 망가지며, 얼마나 많은 예수의 싹이 잔인한 종교가의 발에 밟혀버리는 것일까. 그렇게 보면 우리의 생명이란 길가의 풀같이 밟히다 겨우 남은 존재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그러면서도 그것은 싸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최후의 한 마리 병든 아메바 속에 오히려 무한한 새 세계의 가능성이 있다. 나는 그것을 믿는다. 그것을 믿음으로 산다. 이유, 설명이 되거나 말거나 믿는다. 나는 믿고 또 믿으련다.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생각은 케케묵은 생각이다. 허공에 길이 어디 따로 있을까? 나아감, 한없이 올라감이 곧 길이지. 상대적인 존재인 이상 어차피 어느 한 길을 갈 터이요, 그것은 무한한 길의 한 길밖에 아니 될 것이다. 나는 내 가는 길을 갈 뿐이지, 그 자체를 규정할 자격은 없다. 이단은 없다. 누구를 이단이라고 하는 맘이 바로, 이단이람 유일의 이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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