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함석헌 읽기(7) -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샌. 2013. 3. 26. 09:01

7권에 있는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는 1970년의 <씨알의 소리> 창간호와 2호에 연속으로 실렸던 글이다. 태어나서부터 해방이 될 때까지 선생의 종교적, 사상적 변화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걸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운명적으로 걸어온 길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책에는 '인생은 갈대'라는 제목으로 1973년도에 썼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에는 사람이 나서 죽을 때까지의 일생을 어림, 젊음, 일함, 찾음, 깨달음, 날아올라감의 여섯 토막으로 나누고 이를 갈대에 비유해서 읊은 시가 나온다. 선생이 50세 때 지은 것이라고 한다. 특히, 인생의 후반부를 찾음, 깨달음, 날아올라감의 단계로 묘사한 것이 흥미롭다. 선생의 종교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어림


인생은 연한 갈대 연한 순 날카론 맘
쓴 바다 노한 물결 단숨에 무찌르자
끝끝이 뜻 머금고서 다퉈가며 서는 듯


젊음


인생은 푸른 갈대 비바람 치는 날에
자라고 자라잔 맘 하늘에 달 듯하건만
떠는 잎 한데 얽히어 부르짖어 우는 듯


일함


인생은 누런 갈대 바람에 휘적휘적
거친 들 저문 날에 외로운 길손 보고
풀어진 머리 흔들어 '가지 마소' 하는 듯


찾음


인생은 굽은 갈대 망망한 바닷가에
물소리 들어보다 쓴 거품 마셔보다
다시금 하늘 우러러 생각하고 서는 듯


깨달음


인생은 마른 갈대 꽃 지고 잎 나리어
파리고 빈 마음에 찬 물결 밟고 서서
한세상 쓰고 단맛이 다 좋고나 하는 듯


날아올라감


인생은 꺾인 갈대 한 토막 뚫린 피리
높은 봉 구름 위에 거룩한 숨을 마셔
처량한 곡조 한 소리 하늘가에 부는 듯

 

이걸 보면 선생은 시인이기도 하다. 선생의 제일 유명한 시는 '만리 길 나서는 길 / 처자를 내맡기며 / 맘놓고 갈 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로 시작하는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일 것이다. 전집 중 20권이 <인생의 시>라는 제목의 시 선집이다.

 


나는 인생의 줄을 놓쳐버린 일은 없습니다. 넘어지고 헤매이면서도 다시 찾고 다시 일어나려 애를 써온 일생입니다. 나는 찾는 자입니다. 그래서 뒤를 돌아보며 나는 스스로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굴러왔다고 합니다. 생각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면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도중에서 만날 고난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도 그 이상대로 아니 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타협을 하거나 어느 정도로 만족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주저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나는 확신이 없습니다. 내 판단을 양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남에게까지 명령하고 강요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못합니다. 그러노라면 사태가 벌어져서 일은 가야 할대로 가고 맙니다. 가서 보면 역시 내 판단이 옳았구나 하는 생각은 있습니다. 나는 남을 휘둘러 몰아칠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 굴러왔다고 할밖에 없습니다. (1973)


요사이 많이 생각하는 것은 인류의 하는 일이, 특히 주로 정치적인 데서 이러다가는 이 인류는 멸종하고 말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지금 우리가 유일한 인류는 아닙니다. 지난날에도 살았다가 멸종된 인류들이 있습니다. 이 인류라고 영원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생명은 스스로 진화의 큰 과정에서 맞지 않는다 생각할 때는 사정없이 잘라버립니다. 종교적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현대과학의 첨단을 걷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가장 주의할 것은 '통제 불가능'이라는 말입니다. 이 문명은 미쳤습니다. 생각하는 존재인 나로서 할 일은 어떻게 하면 이 미친 운전수의 차에서 내려뛰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인생이 지금 할 일은 이 문명이라는 큰 나무가 거꾸러지는 날 다시 새로 날 수 있는 씨앗을 제 속에 여물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1973)


사람은 원대한 정신에 살아야 합니다. 성공을 못하더라도 무한한 이상에 살다 거기 죽는 것이 참 삶입니다. 마치 만년눈의 히말라야 영봉을 기어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오르다 오르다 눈 속에 죽어도 좋습니다. 발로는 못 디디어도 가슴에 안고 죽는 그 영(靈)의 봉우리가 살아서 부르짖어서 뒤이어 올라오는 수많은 용자(勇者)를 티끌 속에서 불러내고야 말 것입니다. 그 의미에서는 성공자보다 실패자 만세입니다. (1971)


나라는 생각을 내버려야 삶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다. 나의 창문을 확 열어젖히고 산 세계를 바로 볼 때 거기는 이(利)도 해(害)도 희망도 절망도 없다. 그저 생명의 피할 수 없는 명령이 있을 뿐이다. 거기 복종할 때 즐거움이 있다. 그 즐거움은 즐거움 아닌, 즐거운 줄도 모르는 참 즐거움이다. (1975)


사람은 우주 안에 사는 동시에 또 생각함으로 인하여 제 안에 우주를 가진다. 그리하여 내적 세계를 창조한다. 그리하여서 그는 의미에 살고 보람에 살려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절대자에게 부딪치게 마련이다. 이름이야 하나님이라거나 부처라거나 브라만이라거나 유신이라거나 무신이라거나 간에 생각하는 인간인 이상 어느 때에 가서는 자기가 인정하거나 말거나 어떤 절대적인 것이 내 존재 앞에 벽처럼 막아선다. 막아설 뿐 아니라 절대의 권위로 명령하는 것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거야말로 절망적이다. 그러나 그때에 비겁하게 피해서는 아니 된다. 이 의미에서 말한다면 인간이 근본이 절망적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살아난 모든 위대한 혼이 증거하는 바에 의하면 그때에 물러서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그들은 죽음으로써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생애를 보면 한결같이 그후에는 다시 희망, 절망의 물결에 흔들림 없이 절대의 평화 속에 산다. 그것은 정말 산 희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75)


나는 아는 것은 적습니다. 그러나 내 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집착하는 마음은 가지지 않으려 애씁니다. 또 진리는 끊임없이 자라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서 낡은 허울을 아낌없이 버리려고 힘씁니다. 이제 어떤 종교도 자기를 절대화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 그 어느 부분, 어떤 나타냄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한 나타냄 속에서 완전을 믿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믿음에는 주격도 목적격도 붙은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혹은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또 내가 믿고, 네가 믿는 것이 아니라, 그저 믿음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믿으면 우주도 있고 부처님도 있고 하나님도 있습니다. 믿음 없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1978)


인생은 풀이요, 그 영화는 풀의 꽃입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듭니다. 거기 붙은 멋은 하루살이 멋이요, 물거품의 멋입니다. 젊음과 그 젊음의 아름다움을 인류를 위해 바치고 우주 영원한 뜻에 바치십시오. 그러면 세상의 속된 멋쟁이들은 꿈도 못 꿀 참 멋이 거기 스스로 들어 있습니다.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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