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일주일째

샌. 2013. 4. 6. 12:01

일주일째 문밖을 못 나가고 있다.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가 떠날 생각을 안 한다. 누워 있길 좋아하는 친구라 같이 지내자니 하루의 2/3는 나도 따라 누워서 빈둥거린다. 그래도 마음 하나만은 편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결근 신청을 하는 데도 괜히 미안하고 눈치가 보였다. 구부정한 허리를 가지고 억지로라도 출근했을 것이다.


누워 있어도 베란다 창을 통해 바깥 경치는 다 보인다. 봄 햇살이 따스해 보이는데 직접 쬐지는 못한다. 씩씩한 걸음으로 뒷산을 향하는 사람들을 본다. 아쉬운 점은 이번 주에 산청 삼매를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이미 그쪽 매화는 졌다는 소식이다. 내년으로 자동 연기되었다. 또, 한식에 선친 산소를 찾아가는 것도 미뤄지게 됐다. 청계산과 천마산의 봄꽃도 눈에 아른거린다.


그러나 새로운 구경거리도 생겼다. 집에 바로 붙어 있는 소나무에 일주일 전부터 까치가 집을 짓고 있다. 높이가 우리 층과 비슷해서 바로 눈앞이다. 까치 두 마리가 나뭇가지를 물고 와 열심히 둥지를 만드는 모습이 아주 가까이서 보인다. 까치는 크기로 보아 이제 갓 결혼한 신혼부부인 것 같다. 거실에 누워 집 짓는 모양을 구경하노라면 무척 재미있다.


까치는 물고 온 나뭇가지의 반은 밑으로 떨어뜨린다. 부리로 쪼다 보면 헝클어져서 우수수 떨어지기도 한다. 어설퍼 보이는 작업을 끝없이 반복한다. 끊임없이 쌓지만 높이는 그다지 올라가지 않는다. 멀리 산에까지 가서 주워올 게 아니라 밑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재활용하면 될 것 같은데 아직 그걸 줍는 건 보지 못했다. 대신 위에서 떨어지는 나뭇가지를 밑에 있는 까치가 잡아내는 묘기도 보여준다.


다른 까치들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둥지 쟁탈전인 것 같다. 깍깍거리는 소리가 요란해서 내다보면 2:2로 싸우고 있다. 이쪽에서 둥지를 차지했다가 저쪽에서 공격하면 다시 물러나곤 한다. 남의 것을 공짜로 훔치려는 악당이 까치 나라에도 있는 것 같다. 어느 세계나 사는 건 만만치 않다.


오늘은 토요일인데 비가 내린다. 예보로는 내일 오전까지 온다고 한다. 강원도에는 눈 소식도 있다. 꽃구경을 계획한 사람들은 귀한 주말을 망쳤다. 이렇듯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사다. 내 소관이 아닌 일에는 체념하는 게 제일이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라고 포기하면 마음이라도 평안해진다. 친구 역시 갈 때가 되면 가겠지, 라고 편하게 생각하고 있다. 누가 뭐라든, 지구는 제 갈 길을 따라 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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