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샌. 2013. 4. 27. 13:22

노래방이 생기고 나서

사람들은 방문을 벗어나면

노래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내비게이션이 나오고 나서

택시 기사들마저 모니터를 벗어나면

길눈이 어두워져 버렸다

 

컴퓨터가 나오고 나서

아이들은 귀 기울여 듣고 기억하고

가만히 얼굴을 마주 보는 법을 잃어버렸다

 

자동차 바퀴에 내 두 발로 걷는 능력을 내주고

대학 자격증에 스스로 배우는 능력을 내주고

의료 시스템에 내 몸 안의 치유 능력을 내주고

국가 권력에 내 삶의 자율 권력을 내주고

하나뿐인 삶으로 내몰리면서 나는 삶을 잃어버렸다

 

- 잃어버린 것들 / 박노해

 

 

<장자> 천지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공이 남쪽으로 초나라에서 유세를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한음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한 장부가 밭두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물길을 내고 우물에 들어가 옹기그릇을 안고 나와 물을 대고 있었다. 열심히 하지만 힘은 많이 들고 나타나는 성과는 적었다. 자공이 농부에게 말했다. "만약 기계를 쓴다면 하루에 백 두렁의 밭에 물을 줄 수 있습니다. 힘은 적게 들고 효과는 클 터인데 왜 그것을 쓰려고 하지 않는지요?" 농부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오?" 자공이 말했다. "나무를 뚫어 기계를 만든 것인데, 뒤는 돌을 매달아 무겁고 앞의 두레박은 가벼워 물을 손으로 잡고 잡아당기는 것 같아서 빠르게 줄을 당기면 물이 끓어 넘치듯 합니다. 그 이름은 용두레라고 합니다." 농부는 성난 듯 얼굴색이 바뀌었지만 이내 웃으며 말했다. "나는 선생에게서 들은 말인데 기계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고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기계의 마음이 생기고 가슴속에 기계의 마음이 생기면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고 순백의 바탕이 없어지면 정신과 성품이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과 성품이 불안정하면 도가 깃들 곳이 없다고 했소. 내가 두레박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 것이오." 자공은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며 머리를 숙이고 대답이 없었다.'

 

장자의 혜안은 기계를 설명하면서 기계를 부리는 자가 있다는 걸 본 것이다. 부리는 자가 있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종속관계를 만든다. 그것이 기심(機心)이다. 기계에 의존하고 종속되면 인간에 내재하는 순백의 바탕을 잃게 된다. 장자가 기계를 부정적으로 본 이유다.

 

현대는 장자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에 둘러싸여 있다. 주위를 둘러보라. 이런저런 기계의 도움 없이는 단 하루도 사람 노릇을 하며 살 수 없다. 이 시에 나오는 노래방 기계, 내비게이션, 컴퓨터, 자동차를 비롯해 학교, 병원, 국가 등 문명을 구성하는 시스템 역시 기계의 역할을 한다. 장자 시대 농부는 기계를 몰라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쓰지 않는다고 했지만, 현대인은 선택의 권리마저 앗겼다.

 

그렇다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으로 들어가 원시인처럼 살아야 할까? 그게 참 인간의 삶일까? 기계를 쓰면서 내 근본 바탈도 지킬 수는 없을까? 내 두 발로 걷는 능력, 스스로 배우는 능력, 내 몸의 치유 능력, 내 삶의 자율 권력을 잃지 않으면서 이 화려한 문명 속을 어떻게 살아갈까? 어디쯤에 조화의 지점이 있을까? 과연 그것이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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