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갑과 을

샌. 2013. 6. 2. 16:36

 

아내는 스마트폰이지만, 나는 아직 구식폰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치가 역전되는 게 자꾸 생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선생님이 '사람 인'[人]자를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게 생각난다.

지금은, 아내는 길고, 나는 짧다.

 

......................

 

옛날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젠 만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온 원시인 같다.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쳐다보기 바쁘다.

뭘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순댓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마주 앉긴 했으나 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본 건 메뉴를 고를 때뿐이었다.

그리고는 밥을 먹으면서도 시선은 온통 폰에만 가 있었다.

 

정작 대면하고 있는 사람은 무시하면서 무엇에 그리 매달리고 있는 걸까?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이 너무 잘 되다 보니, 가까이 있는 사람은 소외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나에게는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고픈 삐딱이 심리가 있다.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도 끝까지 버티다가 맨 나중에야 기계를 샀다.

 

그때는 민폐 끼치지 말고 빨리 휴대폰을 사라는 압력을 많이 받았다.

스마트폰이 없는 지금도 비슷한 불평을 듣고 있다.

 

스마트폰도 언젠가는 갖게 될 것이지만, 그러나 쉽게는 가지게 될 것 같지 않다.

IT 세계에 무식해서 그런지 도무지 그놈의 효용을 모르겠다.

 

혹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져 어디서나 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모습이 두렵기도 하다.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

 

스마트폰에 기대되는 게 있기는 하다.

카메라 성능에 더 비중을 둔 폰이 나왔으면 좋겠다.

 

또, 스마트폰으로도 블로그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스마트폰이 나온다면 나도 기꺼이 새로 장만할 용의가 있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도 이중적이다.

옛것을 고집하는 건 시대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는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모른다.

 

별로 활용하지도 않을 걸 비싼 요금 주면서 쓰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1만 원 초반대로 넉넉히 사용하고 있다.

 

어찌 되었든 내 궁색한 모습은 한참을 갈 것 같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프라이드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 또한 부인하지 않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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