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징검다리

샌. 2013. 6. 12. 15:45

 

경안천을 산책할 때면 일부로라도 한 번은 이 징검다리를 건넌다. 옆에 번듯한 다리가 있지만 돌아서라도 이 징검다리를 찾게 된다.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는 사이를 사뿐사뿐 건너뛰면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다.

 

어릴 적 고향 마을 앞 개울에도 이런 징검다리가 있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쉽게 물에 잠겨 무릎 위까지 바지를 말아 올리고 건넜다. 심할 때는 아예 바지를 벗어 머리 위에 이고 건너기도 했다. 더 어렸을 때는 아버지 등에 업혀 건넜던 기억도 난다.

 

여름에 홍수라도 나면 당연히 학교로 가는 길이 끊겼다. 시멘트 다리가 있는 읍으로 해서 돌아가자면 두 시간이나 더 걸렸다. 저학년 아이들은 등교하는 걸 포기했고 학교에서도 말렸다. 학교에 안 가도 되는 동생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 뒤에 마을 앞에도 차가 다닐 수 있는 현대식 다리가 생겨 징검다리는 추억으로 사라졌다. 징검다리는 이제 도시 주변에서 옛 시절을 회상시켜주는 유물로 남아 있다. 이곳 징검다리도 실용적으로 따진다면 굳이 놓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개울을 가로지르며 누워 있는 징검다리는 풍경을 완성하는 심미적인 중요한 포인트다. 저 징검다리마저 없다면 경안천은 훨씬 더 밋밋해 보일 것이다.

 

징검다리는 자신의 등을 내놓고 사람들에게 밟고 건너가라 한다. 그래서 징검다리는 이쪽과 저쪽을 이어준다. 우리의 살아가야 할 모습처럼 징검다리 위에서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앞사람을 제치고 갈 수도 없고, 반대편에서 건너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징검다리가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조심성과 배려심이 사라졌는지 모른다. 현대인들은 징검다리 휴일은 반기지만 징검다리 정신은 너무 쉽게 내팽개친 건 아닐까?

 

징검다리는 느리지만 건너는 재미가 있다. 헤엄치는 송사리도 내려다보고 찰랑거리는 물소리도 듣는다. 이제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살아야 하리라. 너무 빨리 달아나려는 마음을 잘 달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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